살림 2

먹고사니즘

by 랑랑

누구나 그렇겠지만 먹는 것에 대한 고민은 늘 많다. 웰빙에서 미식으로 먹는 것에 대한 허들이 넘어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에도 맛집 찾아 타 지역까지 다니시는 분들이 꽤 있다. 먹는 것에 대해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해 먹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신 분들도 꽤 있다. 물론 내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먹는 것에 대한 고민만 많지 잘해 먹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결혼하기 전까지 누가 차려주는 식사 위주로 군소리 없이 그냥 잘 먹는 게 미덕이라 생각해 와서 별생각 없이 먹던 식사 한 끼 한 끼가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내 숙제가 되어버렸다. 하루 2끼 아침은 간단하게 점심은 회사 가서 저녁만 차리면 되는 구조인데도 뭘 해먹을지 참 막막해서 블로그를 찾아보고 엄마한테 전화하고 친구들한테 오늘 저녁 뭐해먹냐고 조언도 구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추천받아도 내가 해낼 수 있는 역량이 적으니 그저 조언일 뿐이었다. 초반 1년은 캠핑장 혹은 펜션에 놀러 온 사람들 같이 먹고살았다. 간단하게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카레 짜장을 하거나 라면을 먹거나 하는 정도의 간단한 것들을 먹고살았더랬다. 신혼 초엔 뭔들...


그렇게 계속 살다가 아이가 생기고 나에게 이유식이라는 숙제가 떨어졌다.

이유식. 이것은 음식은 아니다. 알레르기 테스트와 식습관 적응용 미음. 간도 안되어있어서 성인이 먹으면 니맛도 내 맛도 아니지만 아이의 첫 음식이기 때문에 유기농 야채, 쌀, 고기가 들어가는 것들. 아이의 첫 음식. 도시에 살았다면 배달 신청해서 처리했을 텐데 시골을 살아서 수해를 입지 못하고 내가 손수 만들어야 했다. 이유식 공장이 돌아가면 끊임없이 식재료를 사야 하고 엄지손가락 한 토막만 한 재료의 사용 이후엔 남기는 게 아까워서 성인 음식에 써 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3돌까진 밖에 나가서 사 먹을 만한 게 마땅하지 않다. 고기를 구우면 불판이랑 기름 튀는 게 무섭고 가락국수 한 그릇을 먹이려고 혹은 돈가스 칼국수 짜장면을 먹이려고 한 번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 집에서 집에서 먹게 된 슬픈 이야기. 이때까지도 음식솜씨는 늘지 않았다. 뭘 해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식은 그냥 그 자리였다.

처음엔 반조리에 내용물 추가하는 정도의 조리에 도전했다. 반 조리 오징어 볶음을 사면 삼겹살 사다가 오삼불고기 만들고, 시판 양념 소스를 사다가 내 입맛에 고추장 간장 더 넣어보고 그렇게 먹고살았다. 그러다가 에어프라이어가 보급화 되면서 각종 냉동식품에 대한 조리가 두렵지 않게 되면서 반조리 + 해동의 시즌으로 접어들었다.


퇴사를 기점으로 나에게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고 생각한다. 퇴사를 기점으로 많은 시간이 생기니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들과 해야만 하는 일들이 눈에 확실히 보였다. 시간이 해주는 것들을 사랑한다. 요리도 시간이 만들어주는 것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극명하게 다르다. 내가 요리의 재료를 놓고 보던 시선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더 너그러웠다. 퇴사 전에는 시골인 시댁에서 야채나 나물을 주시면 받아와서 친정에 전량 다 드리거나 친정에 놓고 올 수 없으면 다 거절하거나 했는데 갑자기 시댁에서 주시는 뭉텅이 채소들을 받아오고 싶어졌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아직도 내 심경에 일었던 변화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느닷없이 어머님의 인사치레 같은 이것도 저것도 있으니 가져갈래 하는 말에 [네 주세요] 했다는 것이다. 사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해 낼 수 있는 것도 없는데 뭉텅이 채소 나물들을 어찌어찌 받아와서 정리를 해냈고 무얼 해먹을지 고민하고 블로그로 검색하고 그랬다. 예를 들면 파를 주셔도 한 단 반정도를 뭉텅이로 주셔서 주변에 나눠먹고 냉동실에 잘라서 소분해 놓고 그래도 파는 줄어들지 않아서 블로그에 파로 할 수 있는 요리로 검색을 쭉 해보았다. 그럼 파 엄청나게 들어간 파고기 볶음밥, 파채로 파전 부치고, 파수육 만들어 먹고 뭐 그런 것들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배추 여러 통 주시면 예전엔 화가 났었는데 배추 전 부치고 배추 삶아서 데쳐놓아 겨울 내에 된장국에 넣고 감자탕에 넣고 나물 만들어 먹고 하다 보니 슬슬 재미있어졌다. 무도 비슷했다. 주시면 무생채도 하고 무나물도 하고 그 시기 맞춰서 뭇국도 끓이고 어묵탕에 무부자처럼 무 넣어서 육수 내서 먹기도 했다. 무는 무말랭이 크기로 잘라서 말라가는 모습 보는 것도 참 재미있었다.

그래서 실력은 많이 늘었냐고 물어온다면 그건 또 아니다. 이제 대충 한식은 간장, 소금, 액젓+고추장+설탕의 조합이구나를 아는 정도이지 엄청나게 맛을 자랑하지도 속도가 빠르지도 않다. 칼질도 느리고 예쁘게 모양내거나 이쁘게 디스플레이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냥 생존을 위해 해 먹는 정도이다. 하지만 나이 드니 한식만큼 내 속에 편한 요리가 어디 있나 싶다. 소화가 잘되고 편하니 점점 더 찾게 된다. 정갈하고 색도 이쁘고 정성도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안 먹어도 내가 먹을 만큼만은 꼭 하게 된다. 아이들도 나중에 이 맛을 그리워할까? 내 요리 중에 먹고 싶은 기억의 음식이 있을까? 우리 집의 대표메뉴를 뭐라고 생각할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그나마 할 줄 아는 것들은 계속 요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요리는 참치 액젓과 육수코인과 굴소스로 통한다. 아직도 반조리에서 조금 변주된 아이들로 돌려 막기 하듯 요리하고 산다. 여전히 아이들이 싫어해도 나를 위해 무나물을 하고 청경채를 볶고 버섯을 볶는다. 아이들은 싫겠지만 한번 한 요리는 한 젓가락은 먹어야 한다. 지금 이 맛이 우리 집만의 맛이라 이야기 하긴 어렵지만 엄마의 정성을 한 젓가락은 먹어야 한다.

큰아이가 시험기간이라고 밖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한다. 작은 아이가 운동부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한다. 오랜만에 내가 사랑하는 내 반찬들과 혼밥을 해야겠다. 쓰고 보니 생존신고 같은 글이 되었다. 그렇다 그럭저럭 살고 있다. 그냥 별일 없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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