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다 보면 치울 것들도 한가득 : 루틴
중학교 가사시간에 3첩이 밥 국 김치 간장을 제외한 반찬이 3가지 깔린 게 3첩이라 배웠는데 365일 중에 3첩 반상 이상 차려먹기가 참 쉽지 않다. 3-5첩 반상으로 집 밥 챙겨드시는 분들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미니멀하며 하루하루가 잘 쌓여 나를 만든다는 것을 알고 내 삶의 모토를 하루하루 잘 쌓아놓은 집밥이라 생각하며 살지만, 집 밥을 3첩 반상 이상으로 차리려고 하면 조리에 가까운 나의 주방 살림들은 다 나왔다가 들어가야 하고 그러면 설거지감은 어마어마하다. 설거지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벽면도 닦아야지, 후드도 닦아야 하고, 개수대도 닦아야 하고 그리고 거름망이랑 거름망이 나가는 손과 칫솔이 닿는 데까지 또 열심히 닦아야 한다.
먹는 것뿐만 아니라, 살다 보면 입고 다니는 옷이며 매일 덮고 자는 침구며 사시사철 걸려있는 커트이며 이것도 한 바퀴씩 돌려주려고 하면 가사는 계속 돌아간다. 산다는 것은 계속해서 정진한다는 것이고 정신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를 청결하고 주변을 청결하게 하는 것임으로... 먼지와 모래는 어디서 와서 떨어져 있는 것인지 거기에 나의 머리카락은 나고 자라고 빠지고 자라고 순환하고 또 순환한다.
태생이 게으른 나는 이것들을 후다닥 할 능력이 없다. 손도 결정도 느리기 때문에 시간이 굉장히 많이 소요되고 갑자기 늘어지기 시작하면 일을 마칠 생각이 없기도 하다. 시험 때만 되면 책상정리하고 싶은 아이, 그러다가 손에 닿는 물건들이 주는 추억덩어리에 시간 보내던 아이, 집안일하다 쉬면 그 상태로 두고 그 옆에서 잠잘 수 있는 아이, 어떤 공장 소음과 온도에서도 잘 자는 아이 다 나였기 때문에 일은 간결하게 끝내는 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 집엔 청소기와 물걸레 로봇청소기가 같이 있고, 세탁기와 건조기가 함께 있고 식기세척기도 있다. 청소를 위해 아이들의 구멍 뚫린 옷은 정사각으로 잘라서 주기적으로 오래된 연식의 로봇청소기가 미처 밀고 가지 못한 자리에 남은 머리카락 및 먼지를 닦아내고 버리며, 천연 3종 세제로 불리는 베이킹소다, 과탄산, 구연산, 매직블록, 에탄올 등으로 욕실청소도 열심히 한다.
그래서 아침 루틴은 아이들이 학교를 가고 나면 침구 정리를 하고 빨래를 돌린다. 욕실에 세재를 뿌려놓고 아침 먹은 것들을 설거지하고 식탁 위를 정리하고 로봇청소기가 청소할 수 있게 바닥에 있는 것들을 정리하면서 작은 물걸레로 아이들의 책상 문틀 뭔가 내려 앉은자리들을 한 번씩 쓱 지나간다. 화장실 앞의 발 매트와 의자를 올리고 작은 짐들을 다 위로 올려둔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는 기계에게 바통은 넘길 수 있다.
그러고 씻으러 욕실에 들어간다. 일차적으로 내가 씻는다. 그리고 머리에 트린트먼트를 하고 욕실을 후다닥 정리한다. 거울과 타일에 지저분하게 보이는 것들만 솔질을 하고 변기를 후딱 씻어낸다. 그러고 나서 마저 트린트먼트를 씻어내면서 벽면 타일부터 물로 시원하게 내려준다. 그러고 나면 마지막 스퀴즈로 물기를 내린다. 사용한 청소도구들은 제자리 사용한 수건은 빨래 통에 넣고 출근 준비를 한다. 출근하면서 음쓰버리는 것은 센스이다. 가끔 신경 써서 옷 입은 날은 그러기 전에 음쓰 먼저 버리긴 하다
퇴근하고 집에 가면 식탁 위에 의자가 거꾸로 올라가 있지만 바닥은 반짝반짝하고 집안도 반짝반짝하다. 이 기분이 너무 좋다. 뭔가 정리되어 있는 호텔방에 들어온 것 같다. [물론 우리 집이 호텔은 절대 아니지만]
나는 나의 집안용품들을 사랑한다. 누가 집어 가지도 않을 것들이지만 말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참 좋은 것 같다. 집안용품들을 사랑함으로 올바르게 평가해주고 싶다. 소모품이고 그저 올바르게 적정하게 사용하고 그 끝을 다하는 것이 소임이라는 사실이 아쉽긴 하지만 사용하는 동안 아끼고 사용하고 헤어질 때도 그동안의 충분한 사랑을 알고 겸허히 작별할 수 있을 거 같다.
오늘 아침도 소소한 루틴으로 집안을 정리하고 나왔다.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빨리 귀가하고 싶어지는 12월의 오후이다. 따뜻하고 포근한 집에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먹고 아이들이랑 보드게임 한판하고 우리 집 룰답게 이긴 사람이 정리하고 진사람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편의점에 가는 그런 저녁이 기다리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