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4

모두 제자리

by 랑랑

먹고 쓰고 자고 입고 살려고 하는 필수 용품들이 집에 있다. 이 용품들을 효과적으로 사용 또 재사용하려면 구성원들이 잘 찾을 수 있고 사용 후 편하게 제자리에 둘 수 있어야 한다. 서로에게 약속되어있는 장소라는 것이 처음엔 어렵지만 익숙하면 이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이것만 지키면 정리정돈은 아무것도 아닌데 구성원들 성향이 각기 다르니 정리가 힘들다. 배우자야 다른 환경에서 자랐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들 2명의 정리정돈은 어찌 배우자의 유전자를 몰빵 했는지... 앗 생각해 보니 내 본성도 게을러터져서 정리에 우선순위가 밀리고 컨디션이 달라지면 집안은 난장판이 된다.


그렇다, 본성이 게으르다. 부산부산, 빠릿빠릿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다. 청소도 귀찮고 정리도 귀찮다. 다만 대문자 J이기 때문에 늘 다음이 계획되어 있을 뿐이다. 무언가 계획한 것을 시간을 미루거나 미안한 일을 만들거나 혹여 진행을 못하는 스트레스로 시간을 보내기 싫어한다. 바로바로 일처리를 하고 쉬고 싶은데 산만하면 바로 일처리를 할 수 없고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생각도 몸도 더 정체된다. 내 성향이겠지만 게으름도 합리적이고 타당하게 게으르고 싶다.

합리적으로 쉬고 싶은데 아이들의 물건은 제자리를 벗어난다. 아이들의 예쁘고 작고 부질없이 초라한 이쁜 쓰레기를 내가 막 버릴 수는 없기에 격일로, 다달이, 분기와 연말을 기준으로 버리고 정리하자고 독촉한다. 결국은 아이들 뒤를 쫓아다니며 치우는 꼴이 된다. 아이들에게 주기적으로 좋은 말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고 썼지만 화도 내고 버린다고 협박도 한다. 우리의 공동의 물건은 항상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어디서 그것을 찾는지, 그것이 그 자리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준다. 아이들의 귓등을 스치는 이 잔소리는 나중에 어떤 모습을 하고 나타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동의 물건을 찾기 위해 아이들이 날 찾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추가적으로, 버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물건 잘 못 버린다. 새 물건도 빠릿빠릿 구매하지 못한다. 장바구니에 10개가 담겨있으면 최종구매까지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일 년까지 걸린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두고 구매해서인지 한번 잘 버리지도 못한다. 물건도 감정도 시간도 사람관계도 비슷비슷하다. 매몰비용을 굉장히 아까워하는 인간이다. 이사 2번으로 많은 물건을 버리고 나누고 쓰고 파는 동안 더더욱 나는 구매는 느려지고 버림도 느려졌다. 그 시기에 물건을 다 쓰고 나누고 파는 행위자체가 너무 피곤했다. 물건을 안 샀더라면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구매는 더더욱 느려졌다.


가지고 있는 물건에서는 더 줄여가며 살 수는 없다. 결국 적당한, 선택적, 얼렁뚱땅 미니멀리스트를 선택했다. 완벽하게 내 몸을 갈아 넣어가며 시간을 낚시질하며 강태공처럼 뉘엿뉘엿 집안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있는 것을 더 늘리지 않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있을 건 다 있다. 그래서 할 건 다 한다. 그래놓고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한다.

모두 제자리. 제자리라는 단어 좋다. 나의 자리를 묻는 것 같아서 좋다. 아낌없이 사용하고 후련하게 보내주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나와 만나 나와 또 헤어지는 모든 관계의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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