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겨울.
겨울에는 아침에 눈뜨기 조차 참 버겁다. 여름의 눈꺼풀은 반짝하고 떠졌다면 겨울은 눈꺼풀조차 무겁고 느리다. 코 위의 공기가 그리 차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불속의 공기와는 조금 다르다. 이불 밖을 나가기가 싫어진다. 온도가 다르다는 것을 수시로 느낀다. 실질적인 온도도 온도이지만 할 것이냐 하지 않을 것이냐 내 마음속 갈등의 온도를 매일 느끼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뛸 것이냐 뛰지 않을 것이냐 빨래를 할 것이냐 하지 않을 것이냐 도서관에 갈 것이냐 가지 않을 것이냐 주식을 살 것이냐 사지 않을 것이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이불속에서 눈만 껌뻑이고 있다.
웬만하면 미루고 안 하는 내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몸을 이끄는 것은 자전거 타기이다. 자전거의 효능은 이미 이야기했지만 겨울 찬바람의 온도의 자전거 타기는 더 각별하다.
수족냉증이 있어서 자전거를 탈 때 꼭 장갑이 필요하다. 뜨개실로 되어있는 장갑의 경우는 바람이 송송 들어오기 때문에 안에 여름용 장갑을 덧 끼기도 하고, 그냥 멋 내고 싶은 날엔 가죽장갑을 끼기도 한다. 귀마개, 모자, 목도리 다 필요 없이 장갑만 있으면 겨울 자전거는 탈 수 있다. 물론 바이크용 바지 혹은 아랫단에 시보레가 되어있어서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바지가 있다면 더 좋다. 바이크용 재킷이나 방풍이 가능한 기능성 패딩도 좋다. 하지만 없어도 자전거는 탈 수 있다.
장갑을 들고 자전거를 타러 간다. 장갑을 끼고 핸들의 고무를 만지면 밤새 얼어있던 고무의 한기가 내 손에 흡수된다. 한참을 잡고 있으면 고무 아래에서 꾸준히 전도되는 쇠덩어리의 한기가 느껴진다. 자전거를 스치는 바람과 얼어있던 철물의 한기가 나에게 몰려온다. 그럼에도 두 발로 구르기를 시작한다. 오른발이 밀고 나면 왼발이 다시 밀어준다. 자전거를 배워서 얼마나 다행인지 늘 감사하다. 몸의 균형을 당연하게 잡아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겨울 자전거는 되도록이면 바람 타기를 한다. 새가 하늘에서 날개는 펴고 자유롭게 바람을 타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나의 자전거 타기를 나는 바람 타기라고 부른다. 페달을 열심히 밟다가 바람을 타는 것처럼 페달 구르기 없이 그냥 자전거가 가도록 핸들만 잡는다. [한 손 핸들은 가능한데 두 손 놓기는 코어근육이 없어서 어렵다.] 한 겨울에 이렇게 바람이 들어오게 두면 서서히 부스팅 되는 내 몸과 들어오는 바람사이가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날실과 씨실 사이로의 틈이 겨울만큼 완벽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가!!! 얼굴로 다리로 대놓고 들어오는 바람과는 다르게 섬유의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은 왠지 모르게 사랑스럽다. 1분 열심히 페달을 구르고 30초 바람을 느끼고 30초 동안 이 바람을 어떻게 글로 표현할지 고민도 하다가 어처구니도 없음을 느끼고 다시 페달을 구르고 하늘을 보고 페달을 구르고 새를 본다. 겨울엔 갑천에 새도 많아지고 갈대도 무성해지는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글감의 풍요로움을 느낀다. 뭔가 잘 써질 것 같은 느낌과 상쾌함 새들의 역동적인 동작들 그리고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 그 모든 것들이 완벽하다.
해가 짧아지고 시야확보도 체온확보도 어려워서 퇴근시간에는 버스를 탄다. 버스에서 갑천 자전거도로의 자전거들을 구경한다. 아 나도 손발이 조금만 따뜻하다면 좋을 텐데. 아 나도 추위에 조금만 더 적응이 가능한 인간이면 좋을 텐데. 달리는 자전거들을 부러워한다. 부러운 마음을 어쩔 줄 몰라서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해보기도 했다. 가는 순간은 정말 너무 좋은데 집에 가서 얼었던 몸을 녹이느라 아무것도 완수하지 못하고 정상 체온으로 돌리기 위해 온 시간을 다 써야 했다. 그래서 퇴근시간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탄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날이 조금만 더 포근해지길 바랄 수 밖에....
전날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소화되지 못해서 새벽에 두 번이나 깨고 가까스로 잠이 들어서 모든 것들이 엉망이기만 했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플레이리스트들이 맘에 들지 않아서 꺼버렸다. 주식창에 오르고 내려앉은 것들을 쳐다보기 싫어서 다 닫아버렸다. 내게 숙제 같은 글을 계속 만지작만지작 거리지만 이게 뭔가 싶었다. 어느새 아이들이 일어나 아침을 달라고 준비물을 찾느라 나를 찾았고 이것저것을 챙겨주었다. 이제 내가 청소와 빨래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로 울렁 거지고 욱신거리고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다. 마음을 붙잡으려고 했는데 쉽사리 다 잡히지 않았다. 출근이 자꾸 늦어졌다. 머리를 만지다가 거울을 보다가 그렁거리는 것들이 떨어졌다. 시간이 내 목을 죄어왔지만 그럼에도 자전거를 탔다. 30분까지는 세이프니까 괜찮아 괜찮지. 눈이 안 와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급하게 오느라 상호대차로 빌려놓은 책은 오늘도 도서관에서 나를 기다린다. 아직도 가방에는 노인과 바다와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대로 있다. 노인과 바다와 호밀밭의 파수꾼을 병렬독서한다. 노인은 고등학교에 갔다가 아이는 호텔에서 울고 바다로 간다. 상어가 나오고 매춘 알선인을 동시에 만난다.
무엇이든 읽어나갈 수 있는 어서 다행이고 자전거를 타서 다행이다. 이만한 추위의 대한민국 겨울에 살아서 다행이다. 자전거를 타고 향 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공유자전거가 있어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