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글이란 무엇일까?

2025의 마지막 글

by 랑랑

2025 설날은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아주 많이 내렸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귀경차량들은 고속도로를 가득 메웠고 난생처음으로 이 귀경길에 합류했다. 늘 향하던 여유로운 시골국도에서 꽉 막힌 고속도고의 귀경길이 낯설지만 한편으로는 동생네서 맞이하는 첫 명절이라 기쁘기도 했다. 동생의 집은 준-신축 아파트이고, 아파트의 입성이 무언가를 이루어 낸 트로피 같아서 축하인사를 건네는 모든 것이 다 좋았지만 어색했다. 낯선 천장 아래에서 잠도 오지 않았다. 엄마 마음도 나랑 같으셨는지 동생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새벽을 채웠다.

새벽을 채운 이야기들은 칠순 엄마의 성장기였다. 중, 고등 검정고시의 터널을 지나 대학공부를 하고 있는 엄마. 알아가는 것에 대한 행복,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나누는 과정에 대한 행복 그리고 공부를 통해 새로 얻어지는 사회적 지위와 근로의 즐거움이 엄마를 가득 채웠고, 조금은 버겁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노력하며 잘 이겨내고 있다고 말하는 엄마는 눈부셨다. 딸로서 늘 엄마를 응원한다고 했지만 사실 속으론 이성과 합리라는 이유로 엄마 나이 칠순에 그 공부가 무슨 소용이냐며 폄하한 적이 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엄마에게 들은 그 길은 너무 아름다웠고 나를 부끄럽게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시 한 편이 국어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시화전에 내 시를 써주신 이후 계속 글을 끄적였고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 왔다. 동네 작은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고 그래서 나는 내가 마음먹으면 굉장히 잘쓸 수 있다고 과대평가해 왔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고3에는 대회도 나가보고 문예창작과로 원서도 써보았으나 번번이 좋은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내 글이 별 소용도 합리도 명분도 스스로에게 위로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히 절필을 선택했다. 대학을 들어갔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고 글 없이도 살만 했다. 그런데 살만 한데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지만 다시 쓸 자신이 없었고 묻어두었는데 그날 엄마의 그 고백들은 합리, 명분, 위로 없이도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왔다. 나로 하여금 내 삶의 즐거움과 행복이 된다면... 최우선 최다 재독 중인 나부터 만족시켜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단절을 끊어내고 다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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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 후 마주한 나는 나답지 않게 흐릿하고 묽어져 있었다. 연재를 기준으로 한 묽어짐인지 나를 계속 들여다보았다. 나는 진하고 뜨거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왠지 지금을 꾸역꾸역 살고 있는 듯 느껴졌다. 과거의 영광에서 자주 허우적거렸고 미래엔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누리고 싶었다. 점점 나이 들고 있고 점점 더 과거의 나에 무언가를 비춰 설명하고 싶었고 현재의 나를 무엇이건 간에 설명하고 싶었다. 깊이는 얕지만 나를 설명할 준비를 했다. 집에 돌아와서 무엇을 설명할 것인지 고민했다. 그간 흐릿해진 나의 모습이 조금은 초라해졌고 완벽하게 새로 창조할 자신이 없었던 나는 그렇게 나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글은 소박하게도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아직 거짓말로 글쓰기가 잘 되지 않는다. 허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내 경험이 묻어나지 않으면 판단할 능력도 간추려낼 능력도 되지 않아서 글 앞에서 자주 허덕인다. 그래서 소설을 쓰다가 수 없이 많이 무너졌다. 그래서 자주 내 글을 읽어볼 때마다 글에 내 경험의 일부가 떠오르고 내 생각이 어떻게 추슬러졌는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그 나머지 생각들은 어떻게 남아 있는지가 떠오른다.

글은 생각정리와 자기 치유의 능력이 있다. 글은 남아있기에 말보다는 조금 더 신중하게 쓰고 다듬을 수 있다. 그러면서 문맥과 흐름을 정리할 수 있고 순차적으로 쓰는 사람 본인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진다. 읽는 이의 치유를 묻기엔 내 글이 아직 그 정도로 깊지 않으니 그저 나의 정리와 나의 치유를 위해 일단 글을 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얼마나 나의 취향을 사랑하는지 알았다. 흡사 연애 이후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타인의 무반응과 대수롭지 않은 평가에는 수시로 흔들렸다. 흔들리는 나의 마음을 글로 표현한다고 드라마틱하게 나의 취향이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된 건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나는 내 취향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모든 것을 영상화로 소비하는 사회에서 글을 쓴다는 것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취미는 아님을 그래서 나를 별나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그러면서 타인에게 인정받는다고 싶다는 마음을 함께 내 멋대로 산다는 삶의 자세가 허리를 꼿꼿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미 수차례 알고 나는 쓰면서 고통스러웠지만 쓰면서 행복했다.


그렇게 90개를 채우는 동안 숙제 같은 날도 있었지만 취향을 찾아서 1과 내가 쓴 시를 병행하면서 조금은 힘들어졌다. 몇 번을 쓰지 말까 그냥 잠시 닫을까를 반복했는지... 어떤 날은 학생 때의 글쓰기처럼 연필만 잡고 연습장에 알 수 없는 동그라미만 채워보기도 했다.


10개월 만에 다시 동생집에 다녀왔다. 여전히 낯설었지만 여기저기 살림들과 풍경들이 금방 눈이 익숙해졌다. 다시 생각해 본다. 나에게 글이 무엇인지 평면적인 곳들에 적는 나의 글들을 보고 또 본다.

인격적으로 도덕적으로 인간적으로 부족할 때도 있지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을 글 위에서 찾기로 했다. 앞으로 계속 쓸 것이다. 출간, 등단, 공모전 줄 사람은 없는 내 안의 욕심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지면서 묵묵히 써나갈 것이다. 객관화된 나를 바라보도록 노력할 것이다. 비록 작고 누추하지만 나의 마음을 적은 글들이 타인의 마음에 공감되는 날들이 많아지길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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