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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좋아하는 것

by 랑랑

요가를 하다 보면 코가 찡긋하다. 허리뼈 하나하나 펴지고 흉곽 하나하나가 열리는 느낌이 들 때 코에 드는 느낌. 어릴 쩍 목욕탕에서 놀다가 코로 물 들어간 느낌이랑 비슷하다. 물도 없는 공간에서 몸을 움직였다는 이유로 받게 되는 내 인체의 신비감.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게 되는데 감정 없는 눈물이 고인다.


어릴 때부터 가슴이 남달랐다. 5번째 알파벳을 오래 친구 삼았다. 교복을 입기 싫었다. 옷태는 나지 않고 그 당시엔 빅사이즈는 이쁜 속옷도 없었다. 가슴이 부해 보여 더 살쪄 보였고 종종걸음 혹은 뛰면 나만 보는 거 같고 그리고 진짜 보는 그 시선들 정말 정말 싫었다. 직접 몸으로 반응이 오는 운동을 싫어한다. 가슴이 부각되는 유니폼 입는 운동도 싫어한다. 시선이 꽂히는 운동도 싫어한다. 덕분에 운동을 싫어한다. 원망을 많이 했다. 우유회사에 다녔던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집에 우유 넉넉하다고 밑도 끝도 없이 우유를 마시게 두었던 엄마도 원망했었다. 우유의 고소함을 좋아하는 내 입도 가슴살 올라오는 내 체형도 원망했다. 아니 이렇게 되었다고 우유를 원망했다. 덕분에 체형은 익은 벼처럼 허리뼈 몇 번인가가 휘어있다. 꼿꼿하게 세우고 걸어야 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휘어있다. 30대까지는 소화력이 버텨주었는데 40대부터는 이런 이유로 혹 불편한 자리라고 체한다. 작년 동생 생일엔 잘 먹고도 새벽에 울면서 토해내기도 했다. 이젠 먹는 게 조심스럽다. 그래도 요가와 필라테스를 하면 속이 편안하다. 덕분에 사람답게 산다.


필라 1.5년 요가 1년 주민센터 요가 1.5년까지 하면 얼추 4년 정도 되는 거 같다. 처음은 어버버버 선생님 따라 하기 바쁘다가 이젠 선생님의 말에만 집중하면 얼추 따라 할 수 있다. 아직도 동작이름은 어색하기만 하다. 그저 요가와 필라를 하며 선생님의 동작 설명에 집중하며 설명하는 근육을 그려보고 느껴보려 애쓴다. 해부학 책에서 본 것 같은 근육의 처음과 끝이 어딘지 내 몸에 그려보고 나는 어디까지 가동되는지 들여다본다. 가동 동작 안에서 영역을 1mm 라도 늘리는 느낌으로 조금 더 밀어보고 뻗어준다. 신기하게 더 늘어나는 느낌이 들고, 움직인 나의 몸이 성의 있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전문가가 아니니 아름답진 않다. 어설프지만 날숨에 조금 더 내려가려고 하고 들숨에 웃으면서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가 내 안의 뼈들이 곧게 세워지면 그래서 코가 찡긋하면 그날 요가 한 나에게 그렇게 고맙다.


요가 시작할 때 거울로 보이는 비장한 무표정을 좋아한다. 타인이 어떻게 볼지 생각하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내가 있다. 나를 무심한 듯 보는 내가 너무 좋다. 요가 중에 힘이 들어 무표정에서 더 찌그러질 때 너무 힘에 부쳐 더 찌그러져가는 알면서도 그 순간 거울을 쳐다볼 때. 나는 어이없어진다. 어이없는 나를 보고 살짝 웃어줄 때도 좋다. 잘 해내는 타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열등감 느끼는 순간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칠 때,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듯 혀를 빼꼼 내밀 때도 좋다. 내가 거울을 통해 웃어준다. 좋다. 나의 눈이 나에게 보내는 편지 같아서 좋다. 힘들지.. 힘내. 무표정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그 눈인사가 너무 좋다.


오래 굽어 있던 몸이라 회귀에도 능하다. 그러니까 요가 가야지! 가야지! 그런데 발이 안 떨어지는 날이 있다. 마음이 아파서 몸도 귀찮은 날이 있다. 울고 싶어서 잔뜩 울고 싶은 감정을 온몸에 가득 담고 또 담는 날. 몸을 끌고 요가를 한다. 하고 나면 그 끝엔 눈물이 쏙 들어간다. 사바아사나 눈을 감으면 아픈 마음보다는 아팠다가 풀리는 근육만 기억 남는다. 눈물이 들어간 내 눈을 바라보면서 몸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몸아 네가 이겼어. 사바아사나 잠든다. 아직 명상은 어렵고 잠이 든다.

가벼운 발걸음 집에 오는 길. 전쟁통 고지탈환도 아니고 마음이 스멀스멀 꾸역꾸역 이겨먹는다. 큰애와 작은애의 싸움도 아니고 하루 종일 투닥거린다. 속 시끄럽다. 하루 종일 요가를 수도 없고...


우리 요가선생님. 선생님 하신 지는 10년째라고 하셨다. 주민센터 교육이지만 정통요가를 가르치시려고 노력한다. 싱잉볼도 잘 다루신다. 원생 전부를 다 잘 봐주시려고 노력한다. 말로 행동으로 순서와 방법을 알려주시고 척척 해내신다. 40대의 내가 엄살을 피우면 60대의 그녀는 토닥거려 준다. 원래 그런 거라고 나도 그랬었다고 조금만 더 해보자고 높은 곳에 목표를 두자고 토닥여준다. 여성으로서 사람으로서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육체적 인격적 완성됨을 이뤄가시는 선생님께 존경을 보낸다. 오래 뵙고 싶고 조금이나마 닮아보고 싶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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