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가 사랑하는 윤동주

최애

by 랑랑

꽁꽁 언 운동장, 누군가의 발자국 형태가 얼어서 울퉁불퉁한 바닥을 밟을 때 느껴지는 서걱서걱함이 좋다. 누군가 하얀 눈을 밟고 또 눈을 밟고 밟아 운동장엔 눈은 사라지고 흙탕길이 되었다. 운동장 한 폭에 모두의 발자국들이 남겨졌고 밤새 겨울이 꽁꽁 얼려두었다. 그 모든 선행자들의 발자취. 눈이 만들어낸 꽁꽁 언 힘찬 발걸음.

그날은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마음을 담을 여유도 없이 학교의 운동장을 가로질러 면접실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예요?" 좋아하는 얘기 시키면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내가... 더듬었다. 어버버버 뭐라고 했는지 그 당시도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덕분에 그 뒤로 남은 학교들의 면접도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그해 겨울은 참 우울했다. 인정받지 못한 글과 한없이 밑바닥을 본 나의 면접언어들과 소양. 정신 차리라며 얼굴에 날리던 차디찬 공기들. 꿈은 사라지고 성적에 맞춘 대학을 가는 일이 내게도 생겼다.


윤동주를 좋아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알고 좋아하겠지만 내가 찐이라고 생각한다. 근거는 없지만, 젊은 윤동주가 좋다. 반짝이고 반짝이고 소박하고 아름다운 그 글귀가 좋다.


근거 없는 사랑은 어딘가 모르게 처연하다. 사랑의 근거를 찾아 마음에 청진기를 대본다 현미경으로 들여본다 내 눈으로 마음을 찾는다. 근거 없지 않다. 지금 다시 그 면접 속에 들어가 대답을 한다. 전달하고 싶은 내 진심! 바짝 마르는 입과 떨리는 목소리 그래도 더 말하고 싶은 두 눈 그리고 촉촉해지는 손바닥.

¹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시라고 생각한다. 시인의 시선을 독자가 따라간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고 너무 매몰차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물아일체. 시인과 같이 가을 하늘의 별을 헤아려 본다. 나도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을 아름다운 말 한마디를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을 불러본다. 내가 그리운 것들과 나 사이에 부끄러움과 슬픔 그래도 다시 올 봄과 아침. 시를 읽을 때마다 정말 감탄한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그의 글을 읽고 온전히 이해하고 감동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오른다. 아름답다.

²대한민국 하늘에 등기부등본이 있다면 윤동주 지분이 100 %라고 생각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이 살고 싶은 사람. 부끄러운 마음을 헤아리려는 선구자의 하늘이다. 언젠가 올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 젊은 나이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시에 녹인 윤동주를 존경한다. 그래서 하늘을 보면 늘 윤동주가 떠오른다. 이렇게 살고 싶은 사람은 노년을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선생님이라 부르고 싶진 않지만 윤동주 선생님의 나이 들어감과 환경, 시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계속 무엇을 노래하셨을까 궁금하다. 하늘은 변함없이 푸르르고 여전히 죽어가는 것들은 존재하고 윤동주가 더 살 수 있었다면...

³ 한 없이 가벼워진 나는 술을 먹고 다음날 변기를 잡고 토악질을 한다. 외딴 우물가 아니라 침대에서 5초 안에 도착해 엉덩이 까내리는 변기에 얼굴을 디밀고 토악질을 한다.

우웩... 그 계집애가 미워서. 하고 우웩 토악질을 한다. 또 술을 먹으면 개다. 원망한다.. 그리고 또 우웩.. 가엾어지고... 도로 가다가 우웩.. 보이지도 않고 미워져... 아픈 속을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 그 계집애를 그리워한다. 현대에 수많은 오마주가 있듯 나도 오마주를 하고 있다고 쓰고 싶지만 먹칠을 하는 것 같아서.... 못 써 내려가는 양심일까 실력일까.. 여하튼 그때그때 혼자 행위예술로 대신한다고 있다고 아무 말 대잔치중이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⁴겨울에 내 차디찬 손을 주머니에 넣을 때도 윤동주의 호주머니를 생각한다.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연인의 주먹 한 개 그리고 내 거 한 개 그래서 두 개가 한 주머니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상상도 하며 웃기도 한다. 아니면 수족냉증인인 나를 위한 시였어 라며 사랑받는다는 착각도 해본다. 아니면 쓸쓸한 누군가의 주먹인가 하고 같이 겨울 길을 걸어보기도 한다.

⁵잔나비의 가을밤에 든 생각 가사를 보면 머나먼 별빛 저 별에서도 노래 부르는 사람 살겠지.... 오손도손.. 그리운 것들 모아서... 노래 지어 부르겠지 가사는 윤동주로부터 왔을 리 틀림없다 생각한다. [확인된 바 없는 내 생각이지만 분명 저 어딘가에 윤동주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별나라 사람들 뭐 먹고사는지 궁금했던 우리 시인. 영향력 없는 내 글에 내가 해낼 수 없는 바람을 적는다. 윤동주별을 우주에 새겨놓아야 한다. 윤동주호를 우주로 발사해야 한다. 24세기쯤 누군가의 논문 제목으로 "별나라 사람들 무얼 먹고사나"를 만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이과적 성과를 꿈꾸는 문과적 사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하는 몹쓸 상상력.

⁶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성경을 읽는 동주는 얼마나 슬펐던 것일까.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 성경은 읽는 사람의 책이라는 것을 시를 통해 알았다. 복이 있나니 슬퍼해도 된다로 읽히는 동주의 기적 속에 살고 있다.


면접은 끝이 났다. 이렇게 말했다면 나는 합격했을까? 한강 교수님 수업을 들을 수 있었을까? 도착해보지 못한 꿈을 들여다본다. 동주는 ⁷거미줄을 헝클어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겠지만... 괜찮다. 동주를 사랑하는 이유를 방패 삼아 그때 그 마음으로 삶을 살아간다.

다만, 내 이런 마음을 청년 동주가 알면 어떨까? 웃을까? 무서워할까? 수줍어할까? 불쾌해할까? 그냥 아무 말 없을까? 청년이었던 사진 덕에 이 말도 안 되는 글을 쓸 수 있었다. 나는 동주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필력은 가볍다. 그 깜도 안 되는 필력으로 윤동주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뭇매맞고 싶지 않아서 사랑한다는 대 명제 뒤에 숨는다.

살면서 약속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이것 하나는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예전도 지금도 앞으로도 윤동주를 사랑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변할 수 있지만 동주는 이미 진실한 세기의 계절을 따라.... 역사 같은 포지션을 지키니 말이다



¹별 헤는 밤

²서시

³자화상

⁴호주머니

⁵ 무얼 먹고사나

⁶ 팔복

위로

⁸ 한란계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8화긴긴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