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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정장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랑랑 Mar 27. 2025

 깔끔하게 검은 바지에 흰 남방을 입을까 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갖춰 입어야지.. 하고 오래된 정장을 꺼낸다. 함께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대학도 다니고 면접도 다니고 회사도 다니고 상갓집도 다녔다.


 오래간만에 기차를 다. 최근 기차를 탄게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는다. 큰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주말엄마할 때 금요일 저녁 월요일 아침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금요일엔 아이를 만날 생각에 기뻤고 월요일엔 헤어짐에 가슴이 미어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볼 거라고... 투덜거렸지만 자리 잡아야겠다는 마음도 간절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월요일 아침. 7시 6분 무궁화호를 타려고     나도 모르는 무거운 걸음을 뗄 때, 골목 건너편 ". 출근 잘해라"  아침인사가 건너왔다. 허스키한 목소리 흰머리 실루엣. 옆집 아저씨. 아저씨를 만나러 간다.


 취향은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받는다. 언젠가는 사람들에 관해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몰랐다. 언젠가 쓰고 싶었던, 쓰게 될 사람들 속에 아저씨는 없었다. 글에 검수를 받아야 하나 동의를 받아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몰랐다. 너무 잊고 지냈다. 죄송하다.


 아저씨는 전사셨다. 불공평 불평등한 일에 늘 앞서 계셨다. 아저씨는 불의를 참지 않으시고 낮은 곳에 계셨다. 촛불을 들고 있으면 그 어디쯤 같은 시공간 안에 계셨을 분. 더 나은 세상을 꿈꾸시던 분. 함께 사는 세상을 바라셨던 분. 내가 도서관에서 서점에서 서성거리면 늘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고 책을 권해주셨다. 본인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신 작가셨다. 아저씨 덕분에 내게 안도현 시인은 연어나 함부로 찰 수 없는 연탄재뿐 아니라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기억된다. 척왜척화 척왜척화! 덕분에 박노해 시인도 읽었다. 아저씨 덕분에 아저씨 아들이랑도 친했다. 자기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아이. 아저씨를 닮아 똘망한 나의 후배이자 가족도 등 돌리게 한다는 그 어려운  정치 사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동네 친구. 존경하는 아버지를 잃은 그 친구를 위로하러 간다.


 위로에 서툴다. 가족 잃은 슬픔을 무어라 위로할 수 있을까? 나에게도 좋은 분이었는데 너의 전부였던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내가 뭐라고 위로할 수 있을까? 나는 무섭다. 무어라 입을 뗘내고 너에게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내가 너보다 먼저 울어버릴까 벌써부터 조마조마하다.


 기차는 익숙한 길로 나를 데리고 간다. 익숙한 지명들의 동네를 지나간다. 이제 농사를 시작하려는 손길들이 멀리서도 보이고 아직 갈아엎지 않은 논바닥 파릇파릇하다.


 너와 눈이 마주치자 눈물이 차오른다. 잠시 그렇게 서로를 눈으로 안아준다. 내가 먼저 괜찮냐고 물어야 했는데 네가 먼저 멀리까지 와줘서 고맙다고 얘기했다. 나는 서툴고  부족하다. 아저씨를 영사진으로 뵈니 웃음은 아름답고 아저씨의 영면을 바라는 화환들을 보니 아저씨의 삶의 궤적은 더 아름다웠다. 함께 사는 세상 속에서 나누신 그 마음들을 기억한다. 나에게 건네주셨던 인사를 기억한다. 아저씨 고마웠어요. 그곳에선 아픔 없이 편히 쉬세요.


 정장을 벗는다. 드라이 세제를 꺼내 물에  손으로 조몰락조몰락 거린다. 아저씨 생각이 다시금 난다. 저녁에 손님이 많을 텐데 발인과 마무리까지 친구는 괜찮을는지 짧은 걱정도 다. 목욕의자에 앉아서 미지근한 물에 흐느적거리는 섬유를 손으로 휘휘 저으며 세제 냄새를 맡는다. 향긋하다. 아저씨 생각은 사라지고  다른 상갓집 생각이 났다가 사라지고 회사 생각이, 학교 생각이 났다가 사라진다. 잘 살다가 가는 건 어떤 것일까?


 물에 맑게 헹궈진 정장을 옷걸이에 툴툴 털어 널어본다. 무거워졌음에도 닿을 수 없는 정답. 마음도 툴툴 털어본다. 봄날 볕과 바람에 잘 말라줄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시간에 잘 흐를 것이다. 봄 볕에 말라가는 정장을 바라본다. 오랜  애경사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 다시금 함께 해줄 것임에  고맙.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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