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된장찌개
냉이를 사 왔다. 예전 냉이들은 흙바닥을 다 헤집고 묻히고 자라서 하나하나 몇 번씩 씻어낸 거 같은데 요즘 냉이들은 요즘 아이들처럼 한뿌리 한뿌리도 뽀얗고 이쁘다. 냉이된장찌개가 어울리는 봄날이다. 쌀뜬물에 된장을 풀고 양파 감자 호박 두부를 한꺼번에 몽땅 넣는다. 보글보글 끓으면 냉이를 넣는다. 냉이 향에 대해 글로 써보려고 찌개에 코를 대고 들이마셨지만 향을 써낼 재간이 없다. 그냥 보글보글 끓는 이 순간을 봄의 향이라 우겨본다. 향을 풀어낼 재간 없는 작가지망생은 감히 끓여드시며 읽으시라 권한다. 냉이가 없으면 자매품 쑥도 있다. 둘 다 불가능하시면 오래전부터 이것을 봄이라 가르쳐준 엄마와 국어선생님들의 주입식 교육을 기억해 보십사 권한다. 한 숟가락 간을 본다. 친정엄마가 끓인 거 보단 못하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하다. 아이들에게 먹길 권하지만.. 그냥 된장이 좋다 한다. 넣어줄 거면 고기를 넣어달라고 한다. 이게 봄인데 이때 아니면 못 먹는데라고 몇 번을 설명해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너희는 언제 봄을 알아줄 거니?!
봄이다. 집 앞 화단에 개나리가 폈다. 잠깐 눈이 온 그 순간이 찰나라고 표현해야 할 만큼 따뜻한 봄날이다. 3월 중순 눈을 맞고 더 노랗고 영롱하다. 그 사이에 집주인아저씨께 전화가 왔다. 계약 연장하시겠냐고 하셔서 그러겠다고 했다. 1층에 마음 놓고 살아서 이석증이 좋아졌고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는 잔소리 없이 더 살 수 있으니 먼저 전화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집주인님이 화단에 대해 물으셨다. 꽃들은 잘 있나요? 네! 개나리도 피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제가 놀다 일하다 해서 자주 못 보고 경비실에서 자주 봐주시더라고요.라고 답하니 쉬실 때 꽃 보시면 좋을 거라고 관리해 주시면 힐링되실 거라고 덕담 아닌 덕담을 하신다. 네.. 그저 웃었다. 별거 아닌 인사 치례일 텐데 나 같은 인간에게는 부담이 되고 상처가 되고 비수가 된다. 개나리로 소식을 전한 내가 싫어지고 개나리가 미워진다. 그러다 관리 없이도 이쁘게 펴준 개나리에게 괜스레 미안해진다.
아들 둘의 에너지는 봄을 뚫는다. 봄나물 없이도 기운이 어디서 솟아나는지 체력 하향곡선을 그리는 엄마에 대한 배려는 없다. 너무 쌩쌩하다. 큰 아이는 실수로 원판을 다리에 찧어서 그 에너지가 깁스에 묶여있고 작은 아이는 씨름으로 각성되어 있다. 봄이라고 둘 다 운동에 대해 목숨을 걸고 나에게 각성된 레벨을 자랑한다. 운동에 목숨을 걸면 다른 하나는 소외되기 마련이고 나는 다른 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부탁하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얼르고 달래기도 한다. 비인기종목을 40대까지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10대의 패기를 내가 무슨 수로 어디까지 단호하게 설명해야 할지 종종 눈앞이 깜깜하다. 그러다가 눈앞이 깜깜해서 언성이 높아지고 아이를 울려서 학교에 보낸다. 나는 텅 빈 이 시간 사방이 깜깜해서 식탁에 앉아서 운다.
타인의 별거 아닌 인사 치례도 상처로 기억하며 앞길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면서 패기 넘치며 잘하겠다고 하는 아이에겐 내가 대체 뭐라 한 건지 후회가 가득하다. 저녁에 이야기할 것을.. 저녁이라고 다른 방법이 있을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저녁에 이야기할 것을... 그렇게 후회를 한다.
환한 볕과 포근한 바람의 봄이다. 하지만 늘 포근하다면 봄이 아니다. 하루 안에서도 보드랍고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고 서늘하고 사나웁다. 그렇게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람을 안고서 꽃이 핀다. 겨울부터 봄까지 어느 한 시점도 쉽지 않고 그래서 꽃은 아름답다. 종종 달라지는 바람결이 나 같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여물어 가슴속에 일렁이는 바람을 정화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봄볕에 망나니 바람 같다. 내 옆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나도 어떤 모습일지 모르고 아이들도 모르겠고 삶의 문 앞에 자신이 없다. 그래도 저녁을 차린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봄나물 가득한 밥상. 반은 내 손을 거치고 반은 반찬가게를 거쳤다. 입맛에 맞는 고기만 먹을 것이다. 봄이라고 잔소리해봐야 한 젓가락 먹는 게 전부일 것이다. 결국 남은 건 다 내 차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따라 너무 신난다. 쌉쌀 고소 진득한 봄내음을 식탁에서 만난다. 사나운 바람이 일어도 봄은 봄이다.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