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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사

나마스떼와 안녕하세요

by 랑랑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시인의 인도 여행기에 홀딱 반해서 나는 첫 해외여행으로 인도를 선택했다. 어린 마음에 거기 가면 신비로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언가를 얻어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많고 돈은 없었기에 제일 저렴한 항공권을 구매했다. 간사이 공항, 돈무앙 공항을 거쳐서 공항에서 한 밤을 자고 깜깜한 저녁 뭄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벗어나자 어둠이 더 어둑해지고 뜨거운 바람에 낯선 향신료와 공항 빈민가의 냄새가 무겁게 실려왔다.

모두가 나에게 나마스떼라고 인사했다. 공항을 나와 릭샤를 타며, 게스트하우스에서, 슈퍼에서, 지나가는 거지들에게, 지나가는 친절한 인도인들에게 나마스떼 인사를 받았다. 다음날 길거리 음식점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서, 기차역에서, 기차 안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날씨는 더워지고 호객행위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당연하게 적선을 요구하는 거지들에게도 나마스떼라는 인사를 받자 나는 화가 났다. 두꺼운 여행책자에 나마스떼가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알려주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 화가 났다. 경의가 어디 있는 건지.. 존중이 어디 있는 것인지.. 류시화 시인은 좋은 사람만 만난 건가 봐 나는 투덜거리고 계속해서 화가 나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에 가면 저마다 각자의 나라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헬로. 봉쥬르. 구텐닥. 니하오. 오하요, 싸와디카. 안녕하세요. 이국의 땅에서 들리는 낯익은 인사에 마음이 녹았다. 나의 안녕을 물어준다는 거창한 뜻이 아니었어도 그저 좋았다. 정서와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은 먼 이국땅에서 내 편으로 느껴졌다.


그때 나는 무모한 인간이어서, 별로 도움 되지 않은 두꺼운 가이드북을 들고, 때론 거리에서 잠들었고 때론 겁 없이 밤새 걷기도 했다. 이국의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서 누워있기만 하기도 했고 화장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거렸다. 무서운 저녁 혼자 잠들기 힘들면 나에게 노래를 불러주었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을. 게스트하우스 친구들이 등대라고 놀렸다. 한 곡 다 부르면 잠이 든다고 대단한 노래라고 웃었다. 나는 그 노래를 부를 때 덜 외로웠다. 엄마가 옆에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 종종 외롭고 고생인지 여행인지 모르겠고 날은 덥고 배탈 나고 거대한 유적들 앞에 나는 느닷없이 울고 싶기도 하고 집에 가고 싶다가도 오래 남아있고 싶었다. 티켓을 며칠 더 연장할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결국 정해진 티켓의 날자와 시간에 인천공항에 귀국했다. 노프라브럼. 노프라브럼. 노프라브럼. 귀국 때는 천연덕스럽고 능글거리는 인도인이 되어있었다.


인도인이 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인천공항을 지나 서울에 간다. 공항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정말 나의 안녕이 궁금한 거니? 나 또한 너의 안녕이 정말 궁금한 걸까? [무탈함을 묻는 보편적인 인사라는데] 나는 까칠한 인도인이 되어본다. 까끌까끌 뾰족뾰족 까칠 날카롭고 예민하고 옹좁다. 그래 나마스떼랑 안녕하세요 누가 더 대단한 인사인지 대결해 보자고 이러는 거니? 잠에서 깨어나고 싶다. 이 철없는 꿈의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다.


요가수업. 거울로 보이는 나에게, 같이 수련하는 얼굴만 아는 요가원들에게, 그리고 선생님께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한다. 그때 마음이 조금 더 넓었다면 한 발 더 다가갈 마음이 되었다면... 나는 요가를 하면서 그때 어린 나를 바라본다. 나의 철없고 객기 넘치고 싹수없고 저만 알았던... 낯 뜨거운 과거 속 나를 본다. [과거를 다시 체험하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재구성하는 일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대면하는 일입니다.]*는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을 되새김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신비로울 것 없는 평범한 오늘! 누구보다 밝게 당신의 안녕을 묻는 사람이 될 테다.




*신영복 처음처럼 - 과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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