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는 칭찬들을 일이 많지 않아서...
출근 준비를 하면서 아이들이 쓰던 모래놀이 삽을 챙겼다. 전날 지나가며 죽어있는 참새 한 마리. 누군가에 밟힐까 싶어서 화단에 옮겨두었다. 그냥 둘 수는 없어 가방을 뒤져보니 물티슈가 있어서 물티슈로 덮어놓았었다. 하루 사이에 물티슈는 날아가고 덩그러니 참새만 남았다. 이 세상을 며칠이나 살았던 걸까? 얼마나 날아봤을까? 어제보다 더 작아 보였다. 참새의 사라진 눈의 자리로 텅 빈 머리뼈가 보였다. 어제 잠깐 누워있던 자리 옆을 미니삽으로 두 번 세 번 긁어내니 참새가 누울 만큼의 자리가 파였다. 땅에 참새를 누위고 위에 흙을 덮고 그 위를 다독이고 기도를 했다. 아무 일도 없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없고 그저 순간 지나가는 일이었다.
비 오고 난 다음날 갑천을 나가면 도로 위로 지렁이들이 나와있다. 축축한 몸을 말리려다가 사람에 밟히고 자전거에 치이고 혹은 다시 해가 떠서 말라죽기 다반사이다. 가끔 길가에 지렁이들을 화단으로 옮겨놓는다. 지렁이의 꿈틀거림이 마냥 좋지만은 않아서 결국은 화단에 이쁘게 내려놓지 못하고 거의 던지고 만다. 나의 손길에 꿈틀꿈틀하면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게 좀 더 오래 사는 거 아니겠니 하고 나에게 또 너에게 토닥거린다. 물론 옆에 걷는 신랑님은 참 싫어하신다. 운명대로 살다가 죽을 수도 있는 거라고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매몰차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세균 있다고 손을 안 잡아준다. 흥! 치!
위에 두 문단만 보면 참 착해 보이는데, 여기서부터는 잔혹사를 풀어보려고 한다. 솔직한 척 글로 옮겨보지만 나는 종종 글보다 더 잔인했다. 어렸다고 철없고 그럴 수 있다고 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였다.
어릴 쩍 흙집에 살아서 동고동락하는 곤충이 정말 많았는데, 그중 개미가 제일 많이 보이고 제일 징글징글했고 제일 만만했다. 보일 때마다 엄지손톱으로 눌러 죽이기도 많이 했다. 일열종대 어디론가 가는 개미들을 30 쎈치 자로 밀어 죽인 적도 있다. 잠자리의 날개와 꼬리와 몸을 기억할 수도 없이 많이 분해했다. 집에서 벌을 키웠을 때 겁도 없이 몸짓이 둔한 일벌들의 침을 핀셋으로 잡아 빼 죽인 적도 있다. 집에 들어오는 거미 부자된다고 그냥 살려준 적도 많았다만 창문과 방충망 여닫는 게 귀찮아서 화장지로 눌러 죽였던 적도 많다. 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늦게나마 하는 사과를.. 지금 착하게 살기 위해 하는 노력으로 받아주면 안 될까?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엄청나게 부자인 집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갔다. 집에 애완용 곰이 있는 집이었다. 살아있는 거대한 곰인형에게 안겨서 놀며 싱싱한 연어를 같이 먹었다. 그 집에 할머니가 내게 선물로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하셨다.
-할머니, 필요한 게 없어요.
꿈에서도 난 필요한 게 없었나 보다. 할머니가 꿈속에서 나를 굉장히 딱하게 바라보셨고 난 다시 대답했다.
-필요한 게 없어요 할머니.. 다달이 신랑 월급만큼으로 그냥 그만큼으로 살아갈래요.
꿈속에서 나는 슬슬 이 꿈이 끝나길 바랐다. 이 꿈을 지켜보는 전지전능한 누군가가 있을 것만 같은데 왠지 모르게 끌끌 혀 차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서 그 시선이 나를 안쓰러워할 것만 같았다. 할머니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들고 오라고 했고 내 손엔 번쩍 거리는 팔찌가 채워졌다. 팔찌는 이뻤고 묘하게 기분이 좋았고 그 생생한 기분이 좋아서 꿈에서 깨어나서도 기억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일어나서도 기억이 나는 그 꿈을 아침부터 여러 번 복기해 두었다. 곰. 따뜻한 곰. 할머니. 팔찌선물.
해몽을 찾아보지 않았다. 좋은 꿈일 거 같은데, 좋은 꿈을 꿔도 복권은 사지 않는다. 나는 내 운이 일확천금으로 귀결되길 바라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돈이 더 많으면 좋겠지만, 내 운은 늘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반가운 사람들에게 오는 연락이었으면! 이왕이면 밥 사주겠다는 전화였으면! 좋겠다. 그게 내가 원하는 행복이다.
자꾸 고르는 단편소설 속에 누군가가 죽는다. 가볍게 시작했는데 자꾸 훌쩍거린다. 그러고 보니 새를 묻어주며 안타까움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덤덤했다. 새의 서사를 상상하고 만들어주고 그것을 느끼는 방법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글 속의 죽음에 슬퍼하면서 실제 죽음에 단조로웠던 내가 밉다. 문체도 서사도 마음도 부족하다. 부족한 내가 싫다. 밉다.
전화기는 긴 잠을 자는 중이고 나도 잠이나 자야겠다. 그날 꿈속으로 다시 들어가 팔찌는 필요 없고 칭찬해 달라고! 칭찬해 달라고! 앵겨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