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
맑은 아침. 멀리서 해가 뜨고 갑천은 잘박하게 흐르고 요란하게 예초기가 돌아간다. 5월 한 낮은 여름같이 뜨거우니 이른 시간부터 천변 정비 작업에 한창이다. 예초기에 풀들은 잘려나가고 약간의 시차로 잘려나간 것들을 갈고리와 에어프레셔로 정리하는 손길이 뒤따른다. 반복적으로 풀내와 예초기 석유냄새가 먼지바람에 날렸다가 가라앉았다 한다. 5월이 가고 6월이 오고 있다.
6월은 벌초로 시작하는 풀내음과 함께 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오래전부터 해왔던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아빠 몫이 되고 또 내 몫이 된 일. 머리 위에 해는 뜨겁게 떠있고 5평 남짓 공간의 풀을 베어내면 풀 내음이 피비린내처럼 느껴졌던 찰나들. 봉분 앞에서 앞담화인지 뒷담화인지 밤머리재 이야기와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 양반 참 고약했어로 마무리되던 레퍼토리. 지금 이 벌초가 의미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누가 알아주는 건지 모르는 건지... 의미를 잃어가는 일을 해마다 반복하는 건 참 시시한 일이면서 씁쓸한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노후가 걱정되지 않을 만큼 재산을 가지고 계셨는데도 인색하셔서 가끔 우리가 놀러 가면 방이 중간에 차가워졌다. 새벽녘에 할머니의 높은 목소리와 아빠의 투덜거림이 할아버지를 혼내면 다시 방이 따뜻해졌다. 본인이 따뜻하고 배부르고 편하면 타인은 안중에 없으셨고 그게 자식, 손자, 손녀여도 동일했다. 막내 손녀인 나를 특별히 이뻐하지 않으셨지만, 15명의 손자 손녀 그 누구도 사랑을 주지 않았기에 이런 평등은 나름 괜찮았다.
할아버지랑 대화한 기억도 없다가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하신 후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학교랑 병원이랑 너무 가까워서 안 가볼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가까워졌고 고모들과 큰아빠들과 아빠의 민낯을 보게 되니 자꾸 멀어졌다. 개인의 이익과 이익은 어쩜 이렇게 서로에게 뻔뻔해져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지 기가 막혔다. 몸은 불편하지만 귀는 잘 들리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웠다. 스스로의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할아버지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학병원에서 우리 집 그리고 고모네 옆집으로 그리고 결국 요양원으로 옮기게 했다. 돌아가시고 장지에서 흙 한 삽 퍼 관 위에 던질 때 할아버지가 옮겨 다니셨던 순간들이 병원에서의 수다가 머릿속을 꽉 채웠다. 다시 볼 수 없음이 서글퍼서 펑펑 울었다.
근 10년을 벌초 다녔다. 내가 무슨 지분이 있다고 벌초를 하러 다녔는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가니까 종합선물세트의 별 볼일 없는 양갱 마냥 껴 다녔다. 누워계시는 할아버지 앞에 대놓고 앞담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큰 힘과 기술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빠의 늦은 고단함을 같이 나누는 것도 좋았다. 잘려나가는 풀냄새가 비릿한 것도 금방 잘린 풀줄기가 볕에 에메랄드 빛으로 말라가는 것도 볕의 뜨거움도 예초기의 열기와 덜덜거림도 좋아했다. 제일 좋은 건 할아버지를 닮은 아빠, 큰아빠들, 고모들, 언니, 오빠, 동생들 그리고 나도 모두 그 유전자에서 한치도 어긋남 없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봤자 고만고만한 이익들 앞에 왜들 그렇게 서로 할퀴어 냈는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줄 이기적 대명사 나의 할아버지가 6.25 참전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기적인 사람도 애국자일 수 있고 이기적이어도 이타심은 있을 수 있음을 선과 악의 고정관념을 더 떨쳐버리게 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심해에 봉인되어 있던 그 기록은 결국 스스로를 산청 호국원으로 인도했다. 스스로 노쇠하는 아들의 벌초를 멈추게 하고 겁을 상실한 나의 앞담화를 잠재웠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깊고 더 넓고 뛰어났고 좋은 사람이었다.
예초기 작업의 풀내 기름내에 엄마에게 아침 문안 전화를 한다. 엄마~!로 시작하는 우리의 대화. 손자들은 잘 지내는지 조서방은 잘 지내는지 우리 딸 회사생활은 괜찮은지 몸은 괜찮은지 엄마의 걱정은 끝이 없다. 대화는 강물처럼 절박히 흐르고 무엇 때문에 전화했는지 모르겠고 그냥 이 순간이 좋다. 전화를 끈을 무렵 [아빠랑 호국원 다녀왔어. 할아버지 할머니 잘 계시니까 걱정 말고~] 엄마가 말한다. 엄마의 바지런함과 포용에 늘 감사하다. 벌초라도 해야 갈 일이 만들어지던 나의 옹졸한 마음 씀씀이가 초라하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할아버지가 더 자랑스러운 6월이 온다. 이렇게나마 할아버지를 다시 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