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미니멀 1

소화되지 못한 기억

by 랑랑

시도동군읍면리. 서울 살다가 어느 날 날벼락처럼 살게 된 리로 끝나는 그 동네. 시골에 산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단편적인 삶을 살게 했던 것 같다. 다양한 체험이 어렵고 자연이 취향에 맞지 않으면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곳이며 생산적인 일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겨울이면 더더욱 고립되어 있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그 동네를 살며 참 외로웠다. 덕분에 할 일이라고는 책 보기 동생과 놀기 그리고 여러 가지 상상과 생각하기 뿐이었다.

핑계를 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엄마는 지나치게 기억에 낙관적이고 아빠는 지나치게 구체적인 기억 강박이 있다. 엄마랑 아빠랑 섞어주면 좋을 텐데, 불행히도 난 아빠의 유전자를 몰빵 받았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도 잘 기억한다. 공부 머리로 자랐다면 좋을 텐데 더 불행히도 공부 머리로 진화하진 못했다.


생각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통째로 나온 생각들을 약간의 분류를 거쳐 나눠놓는다. 계획형과 상상형으로 나누고 계획형은 공장을 돌리듯 메신저에 쌓이는 업무처럼 하나씩 클리어해 나간다. 계획형의 반절은 상상형으로 바뀌고 내가 대처할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한다. 여러 가지 계획형 상상은 많으면 많은수록 좋다. 그래야 혹여 발생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나머지 순수 상상형 생각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멍 때린다. 나무가 로봇으로 변하는 상상도 하고 오리를 보고 시를 써볼까 생각도 하고 그냥 갑천을 물끄러미 보기도 한다. [요즘은 이걸 글로 써볼까 글에 어떻게 녹이지 하는 마음이 커서 즐거운 마음으로 멍 때리진 못하고 있다.]여하튼 생각을 한다. 많이 한다. 여기까진 다 좋다.

그런데 의외의 복병이 있다. 생각이 버려지질 않는다. 서두에 이야기한 아빠를 닮았는데 거기서 더 진화한 듯 한 능력치다. 지나치게 다 담고 있다. 아 개 피곤하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이 기억을 다 끄집어서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이 기억들을 다시 되짚어보는 생각이 드는 날은 가끔 나도 과부하에 걸린다. 특히 아이들과의 관계가 참 어려운데, 오늘 지금 우리의 문제가 어제 그제 혹은 몇 년 전에 있던 문제와 섞여서 서로 할퀴고 상처 주고 또 속상한 순간이 되면 어쩔 줄 모르게 된다. 복기를 한다. 다시 새로운 다툼이 일어난다. 다시 복기를 한다. 바뀌는 것 없이 또 다툰다. 나는 보호자가 되기엔 너무 예민하고 너무 치졸하다. 가벼운 말싸움도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지 져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게 뭐라고...


작년부터 이것이 나의 최대 단점이구나 직시하고 정면돌파 중이다. 내 안에 원망과 불안과 걱정이 이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거란걸 알겠는데, 이것들이 미니멀되지 않는다. 물건처럼 미니멀하고 싶은데 내 뇌는 생각을 미니멀할 줄 모른다.


진실이란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거였다.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 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어난 상황에 가장 잘 맞는 행동을 하고, 그러고 나서 나에게 남은 감정의 찌꺼기들은 내가 처리해야 한다. 인내하거나, 잊어준다거나, 용서한다거나. 어쨌든 내가 소화해 낼 수 있으며 - 소화해내야만 하며- 결국 내 안에서 진실이란,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읽는다. 위대한 작가님들 다 나보다 먼저 하셨다. 자괴감이 밀려오지만 난 나대로 쓴다. 쓴다. 또 쓴다.

소화를 위해 요가를 한다.

소화를 하기 위해 뛴다.

오늘도 이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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