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
엄마 원숭이가 아기원숭이를 잃고 울다가 울다가 배에 뛰어들었고 엄마 원숭이가 죽게 되었는데 나중에 엄마배를 갈라보았더니 장이 끊어졌다는 한자 단어. 단장. 장이 끊어질 만큼 슬피 우는 게 어떤 것일까. 그런 슬픔은 어떤 것일까.
눈을 떴는데 몸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무거웠던 적이 언제였더라..
비가 오는 저녁.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아빠는 약속으로 못 나온다고 하시고 택시는 밀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어쩔 수 없구나 터덜터덜 내리는 비를 맞고 집에 가던 날이었다. 씻고 누웠는데 오한이 몸으로 밀려왔다. 허리를 필 수도 없을 만큼 아파서 울다가 울다가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해서도 너무 아픈데 아침부터 거래처 그녀가 날 볶아댔다. 서로 잘잘못을 가리겠다고 메신저 기록을 캡쳐로 보내며 싸웠다. 결국 캡쳐본을 못 믿겠다고 그동안의 팔만대장경 같은 대화내용을 팩스로 넣어달라는 허무맹랑한 요구를 이행하면서도 배가 계속 아팠다. 그리고도 아파서 인터넷으로 내 증상을 검색해 보다가 맹장인 듯해서 외과에 갔다. 역시나 맹장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셀프 진단 내고 온 날 보고 계속 웃으셨다. 그 와중에 거래처 그녀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했고 다시 복원해달라고 나를 볶아댔고, 서둘러 병가를 냈고, 엄마한테 수술 일정을 통보했다. 엄마가 늦을 거 같아서 동의서 사인도 내가 하고 설명도 내가 듣고 텅 빈 병원 복도에서 외로웠다. 그렇지만 아파서 외로울 타이밍이 자꾸 삐걱거렸다. 동의서내용은 무섭고 엄마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들어가고 싶은데 아프고 아파서 빨리 이 상황을 종료하고 싶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부분 마취만 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아플지도 모르고 겁 없이 난 버틸 줄 알았다. 부어오르는 충수를 찾는다고 선생님이 내 장을 마치 순대 잡듯 당기는데 말캉거리는 내 대장이 느껴졌다. 아 이거 감당해 낼 수 있는 고통이 아니구나. 바로 탭을 쳤다. 선생님 죄송해요. 저 지금이라도 전신 마취 시켜주세요. 의사 선생님이 이번엔 크게 웃으셨다.
수술이 끝나고 누워있으니 엄마가 왔다. 진작 말하지 그 랬냐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엄마를 보니 긴장이 풀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그때 문득 말캉거렸던 내 장이 끊어지려면 얼마큼 슬퍼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슬프다는 건 정말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프다.
아이들이 아프다. 고열로 소아과 오픈런이 몇 번째인지. 내가 대신 아픈게 낫지 하는 생각이들 무렵, 아이들은 좀 나아가고 내가 아프다. 그 와중에 출근도 하고 이런 날 무지막지 바쁘고 회사에는 정신력으로 버티고 집에와선 허덕거려 당연하게도 병원에 다녀왔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그리고 누워서 잠이 들었다가 깼다를 반복했다. 땀이나고 나면 덜 아픈듯 했다가 다시 열이나면 아프다. 얼마 만에 고열인지. 눈이 감긴다. 아프다.
사랑한다.
아픈 중에도 열이 내리는 순간들은 먹을 것을 챙기고 빨래를 챙기고 정리를 하기를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싸우고 화내고 또 분쟁이 벌어진다. 조금만 더 아껴주자 다독이지만 서로 입장차이는 내가 아픈 것과 별개이다. 그래도 사랑한다. 하지만 그만들 싸워다오..
다시 단장.
어떤 육아박사님은 책에서 사랑은 부지런함이라고 하셨다. 그랬기에 반대는 게으름이라고... 어떤 사람은 사랑은 낙관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사랑은 계획이라고 했다. 단장을 일으킬 만한 사랑이 내게 있는가. 나는 내가 헌신하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나는 내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변하는 내 사랑은 참 누추하다. 이마와 몸덩이의 온도를 느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몸 하나도 버거워하며 사랑을 하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장이 꾸물꾸물 타인의 손에 잡혀있음을 느낄 때도 그러했다. 아프면 사랑할 힘을 잃는다. 아파도 한결같이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존경심과 경외감을 보낸다.
그리고 단장.
엄마 원숭이는 그럼에도 살았어야 한다. 장이 끊어질 만큼 울지 말고 배로 뛰어들지 말고 살았어야 한다. 삶은 살아야 한다. 사랑해도 사랑해도 무한히 사랑해도 살아야 했다. 강제된 헤어짐이 무섭고 끔찍하고 앞이 보이지 않았어도 살았어야 했다. 단장이라는 단어를 세상으로 내보낼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몰랐을 원숭이 엄마로 자연사하는 그날까지 아이를 생각하며 살았어야 했다고... 그래야 했다고...
헌데 또 이해가 된다. 아이 없는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내가 직접 관여할 수 없는 내 장기를 끊어낼만큼 얼마나 절망스러웠을련지. 상상하다가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상상안에서 헤어나오고 싶은데 슬픔이 늪처럼 날 감아당긴다.
단장.
그래서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단장의 슬픔. 단어의 무게가 무겁고 처연하다. 내 지금의 고통과 과거의 고통을 합쳐도 그 무게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단장을 쓰고싶은 욕심이 생길때 마다 나는 나의 사랑을 상기시켜 어떻게든 버틸것이다. 아프고 슬프고 싸우고 헤어져도 나의 사랑은 부지런함이고 기다림일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