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싫..싫어합니다

by 랑랑

무엇을 싫어하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하고 끌리고 끌려다니며 고등학교를 마쳤다. 흑백으로 편가르길 좋아했지만 우유부단했고 아직도 그러하다. 그런데 내가 명확하게 싫어하는 것이 있다. 비둘기.




엊그제 같은데, 벌써 25년 전인 그때의 D역광장은 넓디넓었다. 모교가 헌납한 큰 돌도 없었고 [지금은 없어졌다...], 시계꽃도 없었고, 지하철 환승입구도 없었다. 그 넓은 곳에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과 거기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과 비둘기만 있었다. 거하게 취한 깊은 밤 공허한 출도착 안내방송 사이로 비둘기의 소리는 끔찍하고 음습했다. 깜깜해서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구구구구 비둘기 소리는 나를 술 깨게 했다. 랑랑 비둘기 마주치지 말고 정신 차리고 집에 가자.
줄곧 역에서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며 왔다가 돌아가며 그때마다 비둘기를 만났다. 역을 나서는 마지막 문이 열리면 도를 아십니까와 예수를 믿으세요와 비둘기를 피하려고 시공감각을 동원했다. 내 영역 안으로 들어오지 마라 주문을 외며 성난 아이언돔을 펼쳐보았던 그때의 나.


그 무서움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굳이 찾고 싶지 않았지만 6년여를 피하다 보니 기억이 부유하였다,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간 공원에서 였다. 생물체를 보며 즐거이 모이를 주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엄마는 우리 먹이려 챙겨두었던 새우깡과 바나나킥을 조금 꺼내 잘게 부수고 나눠 주었다. 내 손바닥에 과자가루가 올라가고 얼마 안 있어 비둘기도 올라왔다. 그리고 난 곧 소리를 지르며 기겁하고 도망쳤다. 그리고는 울었던 거 같은데...

비둘기의 생김새부터 징그럽고 무섭다. 똥그란 눈도 끄덕거리는 목과 동굴소리 같은 구구구 울음도 도시화된 2족 보행하는 빨간 다리 싫다. 잠시도 날지 않고 그저 걷는다. 어제의 토사물과 매일같이 생성되는 일정량의 음쓰들로 인간세계에 하이에나로 살아간다. 겉모습도 싫지만 나는 비둘기의 게으름도 싫어한다. 무서움과 두려움과 분노와 혐오로 나의 시선은 똘똘 뭉쳐있다. 왜 산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이젠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기 위해 역에 가지 않는다. 집 앞에서 목적지까지 목적지에서 집 앞으로 이동한다. 굳이 다시 그들을 마주할 필요가 없는 쉬운 세상에 살기에 또다시 내 기억은 침전했다. 그저 그들을 싫어한 기억만 남아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선택받은 기억만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같다. 시간에 도움으로 망각하는 것이 결국 쉬운 선택이었을까?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을까? 덜 힘들고 덜 우울한 기억들로 힘을 빼며 살기를 선택한 나와 내 기억.



2023. 어제의 내가 있다. 오래된 사람과 인터뷰를 가장한 티타임을 가졌다. 이제야 알았다. 아! 그는 비둘기상의 얼굴이었다. 10년 동안 매일 보면서도 2년여의 되새김질에도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빽빽한 눈코입 그리고 큰 눈 안에 유독 까맣게 차있는 검은 눈동자. 그의 살아온 항적과 일치하는 나의 혐오 항적. 나를 본인 장기판의 쫄쯤으로 좌지우지하려드는 그를! 나를 도시의 비둘기로 살아가게 만들려는 그를! 나는 혐오해왔다는 것을.

그러나 역시 자발적 도시비둘기일지 모른다. 산비둘기이고 싶은 도시비둘기. 열심히 살려고는 하는데 고작 주어 먹는 것은 남의 돈을 좇는 현대판 노비.
겨우 여기서 푼돈 벌이를 하면서! 고고하며 자유스럽게 살 자신도 없으면서! 누군가에게 내 안의 혐오를 프레임 씌우는 고도화된 지능의 비루한 인간의 탈을 썼다. 하루하루 내 입과 아이들의 입에 들어갈 현실적인 고민을 하느라 자유로운 것들은 다 무색해지는 생계형 도시비둘기.

그리고 한동안 백수였던 나. 금전적 자립이 안되면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하던 나의 나에대한 혐오와 경멸 그리고 냉소. 그것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쓸모없는 냉소를 털어낸다. 혐오와 경멸로 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비둘기도.

나도.

비둘기를 닮은 그도.


길에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났고, 여전히 무섭지지만, 멀면 어때 좀 돌아가면 되지! 때론 눈 한번 질끈 감아가자! 며 그저 길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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