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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들때 Oct 21. 2023

오늘의 일기

제목은 젠장


고백하자면 난 한 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 뭐라더라, 내이염이라던가.


어쨌든 며칠 너무 아팠고

며칠 병원 신세를 지고 나왔더니 그렇게 됐다. 젠장.


이건 우리 같은 개들에겐 사실 치명적이다.

그래서 나도 잘 안다.

만나는 녀석들마다, 날 얕잡아본단 걸.


하지만 형이나 누나한테 꿀리는 모습을 보여주긴 싫다.

밖에서도 내가 왕인냥 당당하고 멋진 개이고 싶은 거다.

그러니 어쩌겠나, 못 본 척 하고 살살 피해다닐 수밖에.


근데 솔직히 그것보다 더 속상한 건,

누나랑 형의 기척을 내가 놓칠 때가 있다는 거다.


이전엔 거실에서 가장 먼 형 방의 작은 소리도 잘 들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형이 게임을 하다 기지개를 펴는 소리조차도.

그 때 냉큼 뛰어가 귀여운 척 꼬리 몇 번 흔들어주면

맛있는 껌 한 개를 통째로 받을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줄었다. 젠장젠장.


아깐 특히 속상했다.

안방 침대를 차지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 거실에 나와 보니

소파에 앉아있는 누나의 기색이 심상치 않다.  

어쩐지 눈시울이 벌건 게 운 것도 같다.


훌쩍이는 소리를 전혀 못 들었는데 무슨 일이람??

더 일찍 알아챘더라면 내가 얼굴을 핥아 잔뜩 침범벅을 해줬을텐데 말야.

(접때 보니까 그걸 은근 좋아하더라구)


그럼 누나 기분이 나아졌을텐데.

아... 젠장젠장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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