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을 맞추는 배려
*이것은 빼박 노견의 대열에 합류한 13살 갈색 푸들 '단지'와 함께 하는 일상의 기록. 그리하여 지극히 사적이고 대단히 편협한 시리즈.
요며칠 단지와 아침 산책을 하면서 듣게 된 소리가 있다. 바로 이거다. "하낫둘셋넷, 하낫둘셋넷~ 우리 사랑이 잘 한다~" 분명 박자를 맞추며 누군가를 격려하는 게 분명한 어느 할아버지의 흥얼거림이다. 처음 이 소리를 들었을 땐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손주와 함께 하는 할아버지인가 했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 바로 앞, 그러니까 한 발짝 정도의 앞에는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걷는 작은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얼굴이나 지팡이에 의지한 거동, 짧은 보폭 등으로 짐작컨대 다리 한 쪽이 불편한, 못해도 일흔은 훌쩍 넘어보였고. 그런 할아버지가 3kg은 되려나 싶게 쪼그마한 강아지, 그러니까 사랑이 산책을 시키면서 내내 -입도 안 아프신지- 그렇게나 열심히 응원을 하시는 거였으니, 그 녀석이 어디 아파 보이진 않고 그렇다면 상당히 나이 든 노견이겠구나란 추측이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러던 중, 엊그제는 아주 가까이에서 노인과 사랑이를 마주하게 됐다. 여전히 "하낫둘셋넷, 하낫둘셋넷~ 우리 사랑이 잘 한다~"란 할아버지의 격려의 노래와 함께 말이다. 근데 웬걸, 족히 10살은 되겠거니 예상됐던 사랑이는, 먼 발치서 보던 때와는 다르게 코도 아주 시커멓고 털의 윤기나 생김새도 반지르르한 것이 암만 봐도 전혀 노견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혈기왕성한 어린 강아지같아 보였다. 그래서 여쭤봤다. "강아지 몇 살이예요 어르신?", "어~ 5살이요". 와, 진짜 아직 쌩쌩한 청년이잖아?! (앗, 아가씨일 수도)
그 뒤 같은 풍경은 달리 해석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의 노래는 사랑이를 향한 것도 있겠지만, 할아버지 스스로 열심히 산책하고자 하는 셀프 응원가로도 들렸다. 그리고 사랑이는 사실 할아버지보다 얼마든지 -최소한 목줄이 허용하는 범위까지는- 더 멀리, 빨리, 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뛰어갈 수도 있는 5살 한창 나이지만, 할아버지의 그 응원가에 맞춰 딱 그만큼의 박자로 할아버지와 보폭을 맞춰 걸어주는, 아주 충성스럽고 배려돋는 녀석으로 보였다. 어쩐지 기특하고 고맙게까지 느껴지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니 이제껏 만나온 '노인-강아지' 조합의 산책 풍경에서, 강아지의 드센 뜀박질이라든가 노인은 아랑곳 않고 제 욕구를 앞세워 마구 이리저리 목줄을 당겨대는 모습을 본 기억이 드물다. 대부분은 함께 산책하는 노인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걷곤 했다. 그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다 노견일리는 없으니, 대체로 그 강아지들 모두 -나이와 무관하게- 그런 충성심과 배려가 있었다고 봐도 너무 억지스럽진 않을 거다.
그러고 보면 얘네들이 나보다 나아도 한참 나은 것 같다. 나란 인간은 어떻던가. 고백건대 부모님이 팔순을 넘기고서야, 노인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겨우 관심과 연민이란 게 들어왔다. 그마저도 작고 옹졸하기 짝이 없어, 아직도 난 내 앞을 가로 막는 노인이 답답하고, 도움을 청하는 노인이 귀찮을 때가 많다. 또 어떻던가. 답답함과 귀찮음은 양반이요, 때론 날선 혐오감(아, 정말 늙으면 어쩔 수 없구나...와 같은)이나 지레 공포감(와..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와 같은)까지 가질 때가 있으니, 그야말로 노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노인을 공경합시다' 따위의 표어가 아니라, 바로 근처에 있는 강아지들에게 한 수 배울 일이지 싶다.
그렇게 한 수 배운 마음에 보답도 할 겸, 조만간 또 사랑이와 할아버지를 만난다면 나도 넌지시 읖조리며 응원가를 보태야겠다. "하낫둘셋넷, 하낫둘셋넷~ 우리 사랑이 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