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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Dec 24. 2018

슬픈 크리스마스의 전날

의식의 흐름


  2017년 12월 23일, 귀국했다. 그리고 2018년 12월 24일, 1년하고도 하루가 지났다. 타문화권에서 얻었던 많은 생각들이 칡뿌리처럼 쭉 뻗칠 줄 알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누구나 다 작가지만 글로만 밥을 벌어먹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한번 읽고 두 번 읽고 세 번 읽고 두고두고 볼 수 있는, 돈으로 사서라도 소장하고 싶은 글들을 남기고 싶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매일 한 단어와 그 단어와 연관된 개인의 생각을 담았다. 빵의 문제와 빵으로만 살 수 없는 인간의 실존에 대해 고민하며 순수함과 욕망의 사이를 줄타기하며 지냈다.



  브런치에 도전했다. 한 번의 고배를 마시고 두 번에 걸쳐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브런치라는 공간에 연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인디 공책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다. 독립적인. 그래서 자본주의의 세련됨이나 전문성을 바라보지 않는 서투름의 눈과 눈이 먼 자의 손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그려갔다.


강하늘줄기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찾고 싶어서 먼저 죽음에 이른 이들을 다시 소환했다. 이들이 겪은 삶과 고민의 흔적들을 공감하며 생각을 더하고 빼기도 했다.

  1년 사이, 글을 쓰면 쓸수록 자아가 강해졌다. 신경이 민감해지고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모아둔 돈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부끄러운 것이 온전히 나의 몫만은 아니겠지...


  막노동판에 나갔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이, 지나가던 같은 또래의 표정 옆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간다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던 마음이 검은 봉지에 술병을 채우게 만들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나를 보는 작업


  타협을 했다. 이제 돈을 싫어하지 않으리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레포츠 가이드를 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부강사도 하며 입에 풀을 칠했다.

  타인에게 떠밀려 사회적 경제교육을 이수했다. 창업 지원서를 작성하고 지자체에 접수했다. 덕분에 공무원의 연락을 받고 면담도 했다.

  타인이 하는 큰 사업의 장기 짝이 되고자 사진을 배웠다. 한국사진작가협회가 인정하는 공식 작가가 되기 위해 점수를 모으려 했다. 또다시 타인에게 떠밀려 반장을 자처하고 몇 개의 사진 수업을 이수했다.

  필드에서 뛰고 있는 작가를 만났다. 재능이 있다고 했다. 이 일에 매진할 수 없는 환경이 아쉽다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소중한 기억의 연결고리가 되어준 이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원망하는 마음과 안도의 마음이 뒤섞여서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죽은 물고기처럼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겼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타인에게 떠밀려 잡은 카메라가 이 몸과 이 몸을 둘러싼 세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할머니를 찍었다. 사진을 보며 익숙한 이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세계와 조금씩 화해하기 시작했다. 병실에 누워있는 할머니를 한 인격으로 보고 있던 찰나에 한 통의 메일을 확인했다. S 방송국의 작가였다.

  다큐를 찍었다. TV를 통해 할머니가 세상에 공개됐다. 물론 덤으로 이 몸도 나오게 됐다.

  사진 전시회를 열게 됐다. '서른 두 살 즈음'이라는 주제를 정했다. 청춘이라는 단어에 국한될 수 없는 시기지만 그 비슷한 언저리에서 갈등하고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삶의 흔적들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아름다운 약속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친구는 공무원이 됐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분과 가약을 맺었다. 없는 형편이지만 낼 것은 다 내고 사진과 영상을 찍었다.

  멀리 간 김에 다른 친구를 만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친구의 말이 아직도 선명히 떠오른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 정말 잘 되고 싶어. 꼭 성공해서 아래나 위를 구분하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어.


새벽의 질주


  개인의 개성을 꽃피우는 일과 삶의 풍요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삶의 목적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본 지인들의 모습 속에서 알 수 없는 씁쓸함을 느꼈다. 지인들을 대하는 이 몸 스스로부터 매스꺼운 냄새가 나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하던 일이 정리가 되고 다음 일 전에 쉴 틈이 생겼다. 사실 쉰다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 관계에 목이 마르고 누구보다 더 돈과 명성을 사랑하는 이에게 진정한 쉼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관계의 실타래에서 자유한, 자유해서 자유한 나머지 자유라는 단어를 모르는 초인이 되고 싶다. 그렇기에 초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2018년 12월 24일. 슬픈 크리마스의 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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