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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하루

흐노니에 혼란하다

by 인디 공책
스무하루.jpg 스무하루 - 흐노니에 혼란하다



가끔 허무주의가 잠식할 때면 숫자로 세계를 말하는 사이트에 접속했다. 가짜 종이 위에 떠 있는 통계화된 수치들. 그 속에서, 칠십칠억칠천구백사십육만이천백오십이 명 중의 일 명을 발견했다. 일이라는 숫자로 존재하는 '나'를 말이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숫자 속에 있다는 소속감이 생겨서 삶을 갉아먹고 있는 허무주의를 멀리 쳐냈다.


오랜만에 통계를 찾았다. 오늘 하루만 이십팔만사천사백이십오 명이 태어났고 십일만팔천팔백육십이 명이 사망했다. 으흠, 올해 사라진 숲이 어느 정도인지, 영양실조를 겪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인지, 비만인 사람이 몇 명인지, 가스 고갈까지 남은 일수가 얼마인지, 올해 마약에 지출된 비용이 얼마인지도 알았다. 생의 소속감과 이상한 정의감이 솟았다. 다만 허무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세계의 숫자로 니힐리즘을 쫓아냈던 것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기억의 단지에 물을 주고, '나'에게 밥을 먹이고, 청소를 하고, 마스크를 하고, 정신상담도 신청하고, 좋은 자리를 찾아 카페를 돌아다니고, 공모전을 준비하고, 운동도 했는데 '별'이 보고 싶다." - 찰나적으로 스치는 생각


'나'는 '별'이라는 세계의, 숫자를 믿고 있었다. 오늘 하루 '별'이 몇 번 웃었는지, 인기쟁이 '별'의 생일이 얼마나 남았는지, 다이어트하던 '별'의 체중이 얼마나 줄었는지, 식후 항상 들리던 '별배'의 꾸르륵 소리가 몇 번이나 났는지 알았을 때 '나'님은 고백했다. '삶'이란 정말 살아갈 만한 것이구나.


스무하루, 여전히 유효한 고백은 움트기 시작한 싹을 '흐노니'라 불렀다. 누군가를 아주 그리워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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