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의 감각
스무이틀, 밤이 늦도록 바람과 함께 산보를 했더니 늦은 잠을 잤다. 일곱 시이면 항상 들리는 참새 소리에 잠이 깼지만 다시 맥없이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11시였다.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대충 이불을 정리하고 방을 나왔다. 거실 개념의 공유 공간 한쪽에 자리 잡은 체중계에 몸을 올려놓았다. 일 킬로그램이 또 줄었다. 이별 후 오늘까지 오 킬로그램이 빠진 셈이다. 느낌이 감각의 상상으로만 있지 않은 셈이었다.
옥상에 올라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변함이 없는, 기억의 단지 속 '흐노니'를 사진으로 남겼다. 일층에 내려갔다. 물론 분무기로 정성스럽게 물을 뿌려준 뒤였다.
군살이 빠져가는 몸을 보며 쓴웃음을 한 번 짓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이, 머리를 적시고 몸을 타고 내릴 때마다 조금씩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러면 비틀거렸고, 그때마다 한 손으로 벽을 짚고서야 거울 속에 있는 사내의 거무스름한 수염을 깎을 수 있었다.
옷을 입혔다. 단기 알바를 하며 직장을 알아보려고 샀던 작업복이었다. 작업복 치고는 헐렁해서 편한 후드티였는데 이제는 일상복처럼 입고 다니는 게 마음에 들었나 보다. 헐렁한 후드티에 마스크와 모자. 잿빛 운동화를 신고 검은 바지를 입은, 무겁고 오래된 카메라와 노트북이 넉넉히 들어갈 백팩을 멘 몽상가를 끌고 나왔다.
집을 나설 때는 허기를 느끼지 못했는데 나와 보니 배가 고팠다. 주섬주섬 바지 주머니에서 재난긴급생활비가 들어있는 선불카드를 꺼냈다. 두꺼비 같은 손으로 점심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저렴하면서도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게 하는 음식을 생각하며 식당가를 걸었다.
같은 길을 두 번 돌아가며 고심한 끝에 작은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브라질에서 공장식으로 사육된, 닭으로 만든 패티가 들어간 버거를 주문했다. 말할 것도 없이 세트로 주문했다. 말 못 하는 생명들의 고통과 노동자들의 수고로움에 비해서 정말 훌륭한 가격이었다.
띵동. "509번 고객님, 주문하신 버거가 나왔습니다."
이 미터 간격을 두고 멀찌감치 앉아, 버거를 감싼 포장지를 벗겨냈다. 에덴의 과실만큼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버거를 앙하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이럴 수가 패티가 정말 뜨거웠다. 이 맛은 흡사 중화요릿집에서 주문한 짜장면의 면이 뜨거워서 호호 불며 먹어야 했던, 행복에의 감각을 회복시키는 맛이었다.
스무사흘, 충분한 양식으로 식욕을 재우는 법을 배웠다. 다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길을 나섰다. 바람이 불었다. 요즘 들어 많이 부는 바람이었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 느닷없이 행복에의 감각이 묻어 나왔다. 매일 걷는 산책길의 발걸음에도, 적당한 창가 자리에 앉아 턱을 매만지며 시럽을 잔뜩 넣은 에스프레소를 들이켜는 글쟁이의 손끝에도, 별일 없는 행복에의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