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이레

해나른한 날

by 인디 공책
스무이레하나.jpg 스무이레 - 해나른한 날



해나른하다. 어제보다 이도 높은 이십 도에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오존지수는 보통. 맑은 날이다. 평범하게 할 말이 없을 때 '와 날씨가 참 좋네요'라며 애먼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다. 하지만 딱히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저냥 더할 나위 없이 힘이 없고 보드랍다고 말할 뿐이었다.


해나른하다. 여느 봄날처럼 바람이 없고 따뜻한 말맛이다. 포카라. 페와 호숫가에 앉아 낚싯줄을 던지는 아이와 멀찌가니 살피는 늙은 고양이의 귀퉁이를, 그리 지켜보고는 했다. 하지만 저저마다 다른 언어의 그림들 앞에서 힘이 빠진 온몸을, 애써 오후라는 시간 한편에 기댔다. 여기에 적당히 시럽이 섞인 에스프레소 한 잔은 덧없는 감각에 칠을 더했다.


해나른하다. 계곡에서 물장난을 치고 나온 아이들이, 사발면 한 사발을 들이켜고 통통한 배를 내놓고 발랑 누워 해님의 콧바람에 슬며시 볕을 덮는 감각이다. 이따금 쓰라린 살가죽과 걱정 섞인 꾸지람. 썩소와 함께 모르쇠로 저무는 해님이 오버랩되어 떠오르고는 했다.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디게 자라는 흐노니의 망각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기만 했다.


해나른하다. 해나른해서 해나른한데 해나른한 시간 속의 해나른한 슬픔도 해나른해서 해나른하고는 했다. 그저 스무이레 동안 생의 감각도 해나른함 속에 저물어 간다고 핑계를 대고 싶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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