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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 공책 Jul 04. 2018

A 이야기

A. 그리고 F 이야기

  이야기는 한 남성이 작은 지방에 오면서 시작된다. 그의 이름은 A. 외로움에 지친 A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이름을 몇 번이고 외쳤지만 여성에 대한 그의 시선만큼은 차마 가질 수 없었다.


  사실 A는 평소 칸트와 쇼펜하우어. 니체와 칼릴 지브란을 닮고 싶어 했다. A에게 있어서 이들은 모두 사랑이란 쾌락의 속임수를 일찍이 간파한 사람들이었다.


  A는 범인이었다.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었다. 다만 A가 스스로를 그러하지 않다고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초라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권력에서 밀려난 민중의 무기력한 합리화가 이제 막 시작하려 했다.


  1막이 열렸다. 신선한 꿈을 안고 지방에서 온 A의 좌절이 딱딱한 뉴스의 자막으로 나온다. 청년실업, 갈수록 증가. A는 방송에 자기가 나왔다며 박장대소했다. 그리고 동전 저금통 안에 몇 장 들어있지 않은 천 원짜리를 꺼내들어 집을 나섰다.


  A를 반기는 것은 깊이 잠이 든 마을이었다. A는 조용한 시내가 반갑지 않았다. 다행히 멀리 보이는 편의점의 불빛이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A는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를 집어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퀭한 두 눈의 주인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한 손으로 맥주의 바코드를 찍었다. 삑.


  비가 왔다. 고요한 밤공기를 안주 삼아 도로 한복판을 질주하던 A가 급기야 소리 내서 웃기 시작했다. 그가 맥주를 마시는 건지 비를 마시는 건지 모를 상황이었다. 장자의 물아일체라는 게 이런 건가.


  아가씨 항시 대기. 1막 1장이 마치고 2장이 올라왔다. 편의점 불빛과 다른 색의 불빛이 A의 동공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조용하라고 다그친 이가 없었지만 A는 숨을 죽이고 고양이 발걸음으로 현금인출기 앞에서 카드를 꺼냈다.


  A는 현금인출기의 돈 세는 소리를 뒤로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타자의 시간, 표정, 감정을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옳은 일인가. A의 손은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집어 들었고 A의 발은 또 다른 빛을 가고 있었으며 A의 마음은 같은 하늘 아래 반짝이는 삶을 살고 있는 이에게 걷고 있었다.


  그가 유일한 손님이었다. 그 자리에서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아가씨라는 사람을 요청했다. 그리고 A는 처음으로 F를 만났다. 술병은 열렸지만 A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F에게 A란 어떤 손님이었을까. A는 F에게 인사하고 노래를 불렀다.


  돈. F에게 그것을 주고 택시비를 얹어 주는 A. 그는 F에게 잘 가라고 가서 푹 쉬라고 인사를 건넸다. F는 갔고 A는 남았다. 마이크를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웠다.


  일을 다 마치자 A가 건물에서 나왔다. 분명 비는 그쳤는데 A의 귓가에 빗소리가 맴돌았다. 구름에 가려진 달빛을 쫓던 A의 두 눈에 흐르는 비가 보였다. 구름이 가득했던 밤하늘. 이야기의 1막 2장이 내리고 있었다.



카르페. 카프페디. 카프레디엠. 현재를 잡아라. 네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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