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하게 걱정하는 내가 쓴다
테오는
죽어가는 빈센트를 보며 잠시 말이 없었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길고 긴 잠이 들기 전까지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테오의 놀란 가슴은 하나밖에 없는 형의 모습을, 사랑스러운 예술가의 마지막을 필사적으로 쓸어 담고 있었다. 제발 이 순간만큼은 죽음이라는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거부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 죽었다.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보는 따뜻한 눈으로 붓을 쥐었던 별난 사람이었다. 빈센트는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테오의 곁에서 깊은 잠을 청했다. 형제 이상의 관계였던 두 사람의 사별은 엄청난 상실감을 가져왔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6개월 뒤인 1891년 1월 위대한 예술가를 유일하게 발견한 위대한 미술상은 사랑하는 빈센트의 곁으로 떠났다.
테오 반 고흐는 파리 몽마르트 화랑의 미술상이었다. 제법 큰 화랑의 미술상이었기에 가난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한 가족의 가장으로 있는 입장에서 꾸준히 빈센트를 후원하는 일이란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빈센트를 지지했다. 비록 빈센트가 죽는 그 순간까지 팔린 작품이라곤 1점의 데생 밖에 없었던 무명의 화가였을지라도 테오의 눈에 그는 위대한 화가이며 따뜻한 형이자 친구였다.
나는 빈센트가 아니다
빈센트의 열정과 테오의 사랑이 부러운 사람일 뿐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나의 테오가 되어달라고 구걸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탁이 있다. 제발 어설프게 걱정해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슬픔이 왔을 때 멀찌감치 웃고 지내다가 어쩌다 우연히 소식을 듣는 당신들이 하는 걱정이라는 것은 너무 어설프다.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하는 걱정이 당신들의 것보다 더 노련하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닌가......
위플레쉬라는 영화가 있다. 예술을 향한 광기 어린 집착을 그린 영화다. 예술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지휘자와 연주자를 보며 배운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꿈을 향한 일념이다. 취미나 여가에서 나온 작품과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삶의 일념에서 나온 작품은 다르다. 빈센트 반 고흐도 달랐다. 정말 그림에 미쳐서 진짜 그림만 그렸다. 나도 다르고 싶다. 당신도 다르고 싶을 것 아닌가.....
이제 그만 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