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의 한 독립서점에서 [엄마의 마른 등을 만질 때]라는 책을 구매했습니다. 엄마의 투병기에 대한 작품이었는데 막상 읽으려니 슬프고 어두운 기운에 압도당해 엄두를 못 내고 있었습니다. 엄마 등이 마른 것도 슬픈데 심지어 연약해진 그 등을 막 쓸어내린다니 상상만 해도 이건 너무 슬펐어요. 그러다 용기가 충만한 어느 밤, 책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여느 불효자식처럼 엄마의 죽음은 눈물버튼이니까 조용히 훌쩍이다 끝내 오열까지 한 것은 당연했지요. 작가님이 온 힘을 다해 고르고 다듬은 처연하고 아름다운 문장들 덕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마음 한편에 필연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저에게는 그 슬픔과 상실이 너무 생생했습니다.
엄마는 봄을 참 좋아합니다. 봄에 피는 모든 꽃을 사랑하고, 새롭게 나는 잎들을 유독 귀여워합니다. 벚꽃 시즌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벚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감탄하는 그런 엄마들 중 한 명이지요. 그 밤에 책을 덮고 저는 다시 봄을 헤아려보았습니다. 엄마와 함께 보는 벚꽃은 몇 번이나 남았을까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아무리 많게 30번은 더 남았다고 생각해 봐도 여전히 너무 적었습니다. 엄마가 이토록 사랑하는 봄을 만끽하는데 충분한 숫자는 없겠지만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찰나의 행복을 느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제 생의 기쁨이라면 시간은 언제나 제일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저는 엄마와 이별할 때에도, 제가 이 세상과 이별할 때에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등 뒤로 집 문을 닫고 나서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생애 가장 긴 방학을 선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를 걸어보는 게, 알프스 산을 실컷 보는 게 꿈이라던 엄마에게, 우주여행쯤은 돼야 꿈이라고 비행기 타고 갈 수 있는 곳쯤은 목표로 정정하자고 말해두었죠.
언령을 믿는 저는 말로 내뱉은 저 약속이 끝내 우리를 그곳으로 데리고 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