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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Nov 29. 2018

여름 방학

순식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2번이던 순식이는 먼치킨보다는 컸지만 어쨌든 왜소했다. 1번이었던 먼치킨(https://brunch.co.kr/@indigoblue/48)이 배냇 살이 아직도 붙어있는 귀여운 인상이었다면 순식이는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보이는 느낌의 조그마한 스키니 소년이었다.


그런데 뭐랄까, 여름 방학이 끝나고 순식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가 익히 잘 알던 순식 대신 거의 170 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의 순식이를 닮은 아이가 그라며 나타난 것이다. 마치 리처드 기어가 주연한 영화 <써머스비> 같은 일이었다. 그 역시 마을에서 사라졌다 7년만에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지 않는가. 그렇다고 그 영화의 주인공도 키가 훌쩍 자라서 나타났다는 건 아니다.


대나무가 때때로 하루에 한 자 이상 자란다는 걸 알긴 했지만 순식이가 여름방학 동안 그렇게 자랐다는 건 쇼킹 그 자체였다. 순식은 귀여운 아이에서 선머슴 애로 한달음에 내달린 거였다.


순식간이었다.


키가 자란 만큼 다른 것도 자란 것인지 그 뒤로 순식이는 덩치들과 가까워진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해서 내가 혹은 우리가 알던 순식이는 여름방학 동안 사라지고 말았다. 


써머스비(1993) (출처: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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