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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명 이영주 Dec 29. 2018

스웨터

편물아가씨


우리 집은 대문과 그 양쪽으로는 담장 대신 생울타리가 둘러 있었다. 탱자나무 울타리였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그 왼편으로는 기와집이 들어서있고, 서너 칸 정도의 방이 나란히 줄지어 있는 좁고 긴 툇마루가 보이는 구조였다. 오른쪽은 딱히 기억나지 않으니 왼쪽과 비슷하거나 사람이 기거하지 않는 다른 용도였을 것이다.


우리 뒷집에는 나보다 두어 살 많은 형과 그의 누이들이 살았다. 부모님은 물론 함께였을 거다. 70년대에는 가내수공업으로 이곳저곳의 가정집에서도 작은 기계를 들여놓고 간단한 옷감을 짜고 그랬다. 그 집에도 언제부턴가 편물기계를 돌렸다.


어느 날 그리 친하지는 않았어도 이웃하고 사는지라 뭔가 고구마 같은 것을 쪄들고 놀러 갔더니 누이가 오르간 같은 물건 앞에 앉아 다리미처럼 생긴 것을 연신 좌우로 슥슥 밀며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기계는 지네를 연상시키는 가느다란 촉수 같은 것들이 까닥거리면서 거미줄 같은 실을 뽑아내는 건지 엮어내는 건지 여러 색의 실패들을 매달고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즉, 이 기계는 실을 먹고 스웨터 비슷한 편물을 뱉아내는 중이었다. 뭔가 기하학적 무늬를 가진 그런 천을 말이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누이들은 집에서 이런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던 거다.


편물기계의 한 종류


누이가 둘이었는지 셋이었는지 가마득하지만 그 집 식구들은 모두 피부가 하얬다. 형까지도 얼굴이 뽀얬고 다들 얼굴이 보름달처럼 동그랬다. 우리 집 뒷 울타리 그러니까 그 집과 우리 집 사이의 울타리 가에 그 집 우물이 있었는데 우물가에서 쏴아 소리를 내며 세수할 때 보면 그랬다. 얼굴들이 하얬다.


그 어머니는 괄괄한 사람이었는데 간혹 골목길 사람들과 언성을 높였다. 세 든 사람들과도 말다툼이 있었는데 그 소리는 울타리 너머에서 가감 없이 우리 집까지 잘도 들렸다. 나는 우리 집 우물 가에 난 토란잎 위로 물방울이 동그랗게 뭉쳐 흘러내려 부서지는 모양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백 뮤직처럼 그 말다툼 소리를 듣곤 했다.


몇 년 뒤 아버지는 토란, 머위, 뽕나무, 포도나무, 모란, 작약, 호박 따위가 무성하던 우리 집 텃밭 자리에 집을 짓고 세를 냈다. 뒷방은 우리가 썼고 뒷집과 우리 집 사이에는 벽돌담이 섰다. 그러는 사이에 뒷집 누이들은 필시 시집을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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