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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스쿨 Jan 22. 2019

2018년 망실대회 참여 후에 느낀 점 : 연대

인디 <일상다반사>에 올려주신 조재호 선생님의 망실대회 후기를 공유합니다

* 이 글은 2018 제2회 망실대회 발표자 조재호 선생님께서 인디스쿨(https://indischool.com) 게시판 <일상다반사>에 남겨주신 글을 복사 붙여넣기 한 것입니다. 망실대회 2탄 콘텐츠와 연동하여 편안히 읽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브런치에 옮겨 보았습니다. 조재호 선생님께 허락을 맡고 공유함을 밝힙니다.




1. 


광주로 돌아오는 길이 유독 길게만 느껴졌네요. 집에 돌아와 염정아씨가 나오는 교육 이야기 드라마 sky캐슬을 보고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남기지 않으면 계속 미룰 것 같아서 말이죠. 인디스쿨도 내 교직생활처럼 10년이 훌쩍 넘어가네요. 전과 달리 이젠 뻔뻔해지고 무뎌지고 게을러져서 글 남기기가 쉽지 않아요. 이목이 두려운 것도 아닌데 말이죠. 



2.


서울에 도착하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3호선 타고, 2호선 갈아탄 후 합정역에서 내리는 것을 먼저 실수합니다. 반대방향으로 탄 것이죠. 거기다 "인디스쿨"이 독립적 공간이 있는지도 몰랐고요. 합정역 5번 출구로 내려 한참을 찾습니다. 무슨 호텔 근처라는데 어렵네요. 네이버 지도 찾기 해서 봐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인디스쿨" 관련 검색어를 보니 이미 공간을 찾아가신 선생님의 후기글과 사진이 있어요. 세븐 일레븐이 보이네요. 


인디스쿨 공간 인상은 '인디'답다는 것입니다. 실은 이런 스튜디오식 공간을 두 번 봤어요. 김어준의 벙커. 이이제이 안가. 그 공간들에서 '서울'을 즐기곤 했습니다.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쎄련된 느낌. 도시의 공기를 맛본 농노의 느낌 비슷한 거요. 그런데, 인디 공간은 '안가'나 '벙커'보다 훨씬 세련되었습니다. 착한 '초등'선생님들의 느낌이 물씬 난다고나 할까? <안가>나 <벙커>가 유명인들의 투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에 반해 많은 선생님들의 집단적 연대의 손길이 느껴지면서도 'Indi'의 자유로움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3.


공간에 대한 느낌은 이상. 1시 30분쯤, 들어가자마자 김현희 선생님께서 눈을 크게 뜨시며 알아봐 주십니다. 페북에서는 '페친'이자, 잠자던 '삶'과 '생각'의 망치를 든 젊은 교사인 그분을 나는 솔직히 못 알아봤습니다. 요상한 포즈를 취한 대학 초년 때의 사진(페북)만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문제작을 쓰고, 다양한 논쟁에서 날카롭고, 풍부하며 기발한 논리를 구사하는 교사라는 것. 또 내가 배우고 싶은 영어수업을 하고 있는 분이라는 것. 그런데 그분이 알아봐 주시고 반가워해 주십니다. 글쎄. 이글거리는 그분의 사진인데, 느낌은 뭐랄까. 요새 광주교육청 혁신과에 근무하시는 분? 



4. 


실은 '망실대회에는 망하는 게 진정성'이라는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사회를 주관하시는 선생님께서 "비판, 평가 금지"를 함께 실천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편해지지가 않더군요. 발표하는 것, 특히 선생님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참 긴장됩니다. 저도 소위 1부((?)에 두 번째로 발표했잖아요. 거기 내용에 담임 첫날, "초롱초롱한 6학년 애들 눈빛에 공황이 딱 와버렸다", 이런 내용이었는데요. 그 느낌이 오더군요.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계속 그 '망한'날을 곱씹어야 했고, 망한 날로부터 계속 망해온 이력들을 들추어야 하니까요. 무슨 만용인가, 내가 왜 참여한다고 질렀는가, 이런 후회가 들었습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발표를 하는 것은 '집단상담'으로 여겼고, 그걸 끝내면 스스로 상을 줘야 한다며 '특급호텔'에 예약을 했더랬습니다. 존경하는 아내님이 이를 충분히 받아주셨고요. 그래서 망실대회 참여를 결정하고, 곱씹어 원고를 작성한 후 읽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 '특급호텔' 조식 뷔페만 생각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못 먹어보는 치즈랑 베이컨을 먹고, 요리사에게 "써니사이드업 두 개랑, 오믈렛이요"해서 즉석으로 계란 요리를 먹고. 또 그뿐인가? 단정한 직원들이 품위 있게 인사를 받으며 피트니스센터를 이용한 후 깔끔한 사우나를 하고. 이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그냥 그 생각만 했지, 망실대회는 일부러 잊었습니다. 힘들 거니까요. 정말 망한 사람의 망한 이야기인데, 그 말 하는 방식까지 망해버렸으니 말이죠. 피피티를 준비하지 않고, 원고도 당일 프린트를 김경민 샘께 부탁했으니.  



5. 


스타트를 끊은 분은 지현우 선생님. 소재는 체육수업이었지만, 주제는 매우 심각한(?) 것. 지현우 선생님은 "애들이 스킨십을 많이 한다"라고 했는데 충분히 그럴 것 같은 선생님이셨습니다. 아이들에게 매우 사랑받을 듯  한 선생님. 그리고, 이정백 선생님의 대안학교 <거꾸로 캠퍼스>는 '망'한 교육에 대한 성찰이었습니다. 망한 교육에 대해 '대안'으로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오의는 두고두고 생각합니다. 나처럼 촌사람도 알고 있는 대학로 '샘터'건물이 또 다른 의미의 샘터로 되었다니 신기합니다.


김재동 선생님의 인디스쿨 역사이야기는 트래픽 시간이 8시 30분에 집중되었다는 이야기에 나 혼자 빵 터졌습니다. 내가 근근이 지금 이렇게 교사생활을 이어가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인디이고, 그 시간 동안 내가 기여한 '트래픽'은 얼마인가? 8시 30분에 급히 다운받은 자료로 하루를 보내며 안도했던 십여 년간의 세월이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선생님의 지성과 의지에 기대었다니. '망'한 경험이 냉정한 반성으로 뼈아프게 느껴지고 그 일곱 분의 인디 선생님들에게 한없이 존경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인디라면, 허승환 선생님/정유진 선생님/사수 기산.... 등등의 선생님들이 내게는 '스타'처럼 생각 들기만 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춘화적 발상인가. 인디를 상업적 가치로 상장한다면 하는 생각에 이를 때면 '육아휴직'마저 망하면서 까지 이 일을 하시는 김재동 선생님 이하 인디 운영진들의 노동은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묘해집니다. 



6.


박종훈 선생님의 변호사에서 교사로 새 출발, 시작부터 망했어.... 는 명강의였습니다. 키도 크고, 잘생기고, 목소리도 저음에 변호사까지 한 양반이 저렇게 웃기고 정의로워도 되나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망함>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시작으로 서울 지역별 월수입 통계까지 인용하시는 선생님의 강의는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떤 교육연수보다 훌륭했어요. 대부분의 연수가 연수생을 '객체'로 만든다면, 박종훈 선생님의 발표는 "그래, 우리가 교사지.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이지"라고 스스로 다독이는 계기였어요.  



7. 


진짜는 2부.


기획하신 선생님들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시간이었어요. 마치 "듣기 평가"를 하듯, 15초 정도 되는 사연들을 듣고 서로 나누는 시간이었어요. 나눔도 "상 이름"을 공유하는 시간이었잖아요.  다양한 '상'을 받은 사연도 사연이지만, 주제와 관련한 선생님들의 경험 나누는 시간이 훈훈했어요. "컴퓨터 아줌마"가 되어 "무릎 꿇어"란 반응에 애들이 모두 울며 무릎 꿇고 있는 장면을 나누신 선생님의 이야기는 교사가 그 역할에 걸맞은 일을 못하는 상태인 '망'상태의 이유가 교사 개인에게만 있지 않다는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저는 긴장해서 잘 몰랐는데, 신입 선생님들과 교대 학생분들도 오셨더군요. "학생들과 어떻게 선을 지켜야 할 것인가" "어떻게 재미를 줘야 할 것인가"등과 같은 교사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진솔한 문제들을 나누면서 뭐랄까.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동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습니다.  



8.


연대


"그래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불사하는 동지가 있다"

- 운동권 노래 <연대의 깃발> 가사 중 


저도 박종훈 선생님처럼 사전을 먼저 찾아봅니다.

[연대] 한 덩어리로 서로 굳게 뭉침/두 사람 이상이 어떤 행위를 이행함에 어서 공동으로 책임을 짐.


늘 교사들은 이런 '연대'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어요. 강성 노동조합의 경우는 구체적인 '이해관계'(돈?)때문에 꾸역꾸역 그 조직을 운영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탄력근로제나 쌀값 문제로 그날(12월 1일) 민중대회가 열렸잖아요. 노동자가, 혹은 농민이 '연대'하는 이유가 분명하니까. 하지만, 교사들은? 전문직이니까? 그런데 의사 집단이나, 법률가 집단들과 같은 전문가 집단도 아주 민감하게 연대하잖아요. 하지만, 교사들은?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전교조 집회를 참여하긴 하지만, 노동자로서 같은 이해관계에서 공감하는 것은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연대감은 글쎄... 


망실대회는, 제가 의도했던 것보다 더 강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전투적 혁명가들이 '죽음도 불사하는 동지' 이런 어휘들을 왜 사용했는지 약간 이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내가 이럭저럭 교직에 붙어 있을 수 있었던 힘들이 있었구나.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계시는구나 하는 따뜻한 느낌 말이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아직 '담임'을 해야만 할듯한 현재의 혁신학교에 남아 적폐 자체인 나를 극복할 것인지 아니면 또 도망을 쳐야 하는지 불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망해도 괜찮아, 해주는 먼 곳의 동료들이 무지 많고, 그 동료들이 빛나는 지성과 세련된 유머와 따뜻한 환대와 개인적 존중 속에서 연대를 할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이란 것, 이거 큰 경험입니다. 마미손 장갑을 낀 그들!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인디스쿨 게시판 <일상다반사>에 올라온 조재호 선생님의 글을 복사 붙여넣기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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