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는 날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도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곧 세상을 아무 것 아니었던 듯
버리고 떠날 수 있다는 걸 들었다
나는 두려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비가 무릎까지 내려 부산 가는 길은
내일이나 열릴 거예요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는 언제 딸에서 어머니가 된 걸까
어머니의 어머니는 기어이 세상을 버리시려는 걸까
마음은 비처럼 무거워졌다
창을 씻고 마음까지 적셨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왜 겨우 자식이 세상을 버틸 때
세상을 떠나는 것일까
세상을 버틸 때까지만 세상을 견뎌주는 것일까
왜 기다리는 대신 기어이 옛날이 되려는 것일까
나는 불안했다
어머니가 어머니를 잃고 운다면
나는 어떤 세상의 언어로 위로할 것인가
어머니는 어머니였지 다른 무엇이었던 적 없었는데
비처럼 당신은 가녀리고 울 줄 안다는 것을
깨닫고 장마는 시작된 날
나는 축축한 당신의 아들의 가슴을 털어널고
비가 그치는 것을 기다리기로 한다
어머니는 기다릴 것이다 마른 가슴이 되는 날을
아들이 세상이 어머니의 어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