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의 영하와 도쿄의 시골사람들
“이봐, 여긴 도쿄라고. 왜 굳이 오시아게냔 말이지. 그것도 2달 만에 다시.”
악의 없는 시비에 나는 그냥 웃고 만다. 사실 오시아게는 좋은 답은 아니다. 그것도 두 달만의 재방문이니. 도쿄라면 역시 미술관과 시장의 균형이 좋은 우에노나 골든가이와 오모이데요코초를 오가며 취향대로 취할 수 있는 신주쿠가 있지 않나. 술꾼을 자처하는 내가 수더분한 몇 군데 술집을 단골로 전전하면서도 여지없이 다시 이 고졸한 동네를 다시 찾는 이유를 이 동네 사람 대부분이 궁금해 한다.
“우선 쿠마 겐코가 좋고, 또 영업맨 당신 같은 막무가내 취객이 있어서. 나 같은 술꾼도 시나브로 스며들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질문, 자꾸 답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네요.”
처음 오시아게를 찾은 건 오직 쿠마 겐코의 손길이 묻어 있는 <원@도쿄> 호텔 때문이다. 좁은 시내 호텔의 궁색을 단박에 털어버리는 오묘한 코지함, 좀체 풀어서 설명할 수 없는 그 질감.
그다음은 사람이다. 새벽 2시, 내 옆자리에서 쉴 새 없이 이방인의 침묵을 흔들어 깨우는 투박하고 정겨운.
“그렇지, 오시아게에 나처럼 형편없는 술꾼도 없거든. 뭐 그렇지. 그래도 혼자 여행에 술집 의자에만 붙어 있는 사람도 한심하긴 하지, 암.”
사실 어제 만나 이제 두 번 인사를 나눈 이 친구를 나는 '무엇'으로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시아게의 모든 술집이 폐할 때까지 마셔도 원하는 취기를 얻지 못하는 그는 보험 영업맨이다. 술을 채근하게 하는 영업맨의 ‘그 무엇’이 무엇인진 몰라도, 종료 없이 손님을 맞는 여기 화교 사장의 가게에서 마침표를 찍는 성실에는 휴일이 없다.
“자자, 그래. 이 도쿄의 시골을 찾아준 손님이 있으니 그래도 즐거운 일이지. 그리고 또 이 동네가 어때서 그래. 그만 떠들고 여기 ‘오시아게가 낳은 마츠다 세이코 양’께서 노래 한 곡을 하시겠다는 말씀!”
오랜 단골이 살짝 식은 분위기를 순간 끌어올리며 좌중을 이끈다. 일동 박수와 더불어 흘러나오는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의 <푸른 산호초(青い珊瑚礁)> 전주가 경쾌하다. ‘이제 그만 단골들에게 맡기고 일어설까?’ 하던 소심한 눈치도 걷어 들이기로 한다. 새벽까지 곧장 달리는 호쾌한 술잔에 분위기 바꿔 한 곡 부르는 낭만만 있다면 누구나 오시아게 사람이다.
어디서 왔는지는 묻지 않는 밤. 설익은 위로도, 챙겨야 할 한탄도 없이 공평하게 낯선 사람들이 겨울밤 헛헛함에 마음을 내어놓는 곳. 챙겨온 엔화를 불쏘시개 삼아 이국의 영하를 나는 또 견디어 보기로 한 것이다.
2018.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