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와 오사카가 부딪히며 빚어내는 이 밤의 흥과 취기
오타루의 지역 정서 담뿍 맛본 1차 술집, 그 여닫이 문을 열고 나선다.
첫 가게의 공기를 새로이 바꿀 때다. 많은 이야기와 사람들이 오갔지만 이제 겨우 8시 남짓.
슴슴하게 스미는 취기를 타고 다음 가게를 모색한다.
시나브로 좁은 렌가 거리에도 온기와 이국의 언어가 흐른다.
오뎅은 예외 없이 좋았지만 가득 찬 포만감이 문제다.
그래, 2차는 재료 그대로 승부하는 구이집이 제격이다.
그래서 문을 열고 들어선 게 렌가 요코초 비장탄 구이집.
여간해선 야키니쿠 몇 개를 골랐겠지만, 오타루는 해산물과 채소다.
첫 가게에서 비운 맥주잔의 무게가 단박에 잊힐 만큼 이 술집, 우선 먼저 있던 손님들의 기세가 대단하다.
메뉴판도 꽤 정갈하고 일러스트가 좋아 텐션은 이내 다시 치솟는다.
오타루 누님들:
"어이 어이, 한국에서 왔다잖아. 그러니까 우리같은 시골 동창회가 아니라 진짜 손님이라고!"
늘씬한 중년남 사장님이 수줍게 웃어주지만, 실제로 가게를 장악한 건 사장님의 여자 동창들이다.
한국 드라마를 사랑하고 안주로 K-컬쳐 대화를 즐기는 마니악함이 새삼 감사하다. 여행객에겐 선물같은
현지 손님들이다. 오늘은 동창회. 그냥 마시고 나머진 각자 알아서 하기로 했다는 누님들의 호연지기가
멋스럽고 푸근하다.
오타루 누님들:
"이름이 제이? 한국에는 그런 이름이 없지 않아? 아, 재훈? 그건 어렵네. 그냥 제이라고 할게."
Jay:
"네, 아무렴 어때요. 이미 어깨 닿은 채 술 마시고 있는 걸요."
오타루 누님들:
"이봐, 능청스럽긴. 하하 그래, 제이제이."
Jay:
"두 번 부르지 않아도 알아들어요. 아직 제대로 취하기 전이니까요."
10명도 들어서지 못할 소담한 가게를 흥청이게 하는 이 텐션이 사랑스럽다. 하지만 저 코너에 앉은
세 명의 손님들을 이방인으로 만들 순 없는 일.
오타루 누님들:
"여기 오사카 아가씨들 어때? 예쁘지?"
Jay:
"안녕하세요, 오사카 분들이였네요. 그런데 누님들, 저 분들 그냥 막 우리 대화에 끌고 들어와도 괜찮을까요?"
아니, 말은 그렇게 던졌지만 괜찮다. 오사카 사람의 매력은 주인됨에 있다.
낯선 자리에서 객으로 배려받는 게 지루했을 매력적인 세 명의 주인공들이 기어이 존재감을 발한다.
오사카 세 분들:
"이제야 아는 척 하실 건가요? 사실 오늘 일정 중에 지금이 제일 즐거워요!"
Jay
"아, 네. 전 오사카를 빼곤 대부분의 일본을 가본 관광객입니다."
바라본다. 오늘 여행 와 몇 군데 둘러보곤 술로 의기투합 했다는 세 친구들은 동창생에서 그대로 어른의 인연으로 이어진 깊은 친구다. 술이 좋고 그래서 여행과 날씨는 그저그래도 저녁이면 즐거워진다는, 당찬 호기로움이 높고 단단한 자존으로 다가온다.
Jay
"오사카 분들이라니 생각나요, Boro의 <오사카에서 태어난 여자> 다들 아시죠?
오사카의 세 손님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런데 오타루 누님들까지 합세해 생각지도 못한 노래가 시작된다.
이건 그러니까 오늘의 제일 즐겁고 큰 선물이다.
오타루 누님들 + 오사카 세 분들:
"踊り疲れた ディスコの歸り
디스코텍에서 춤추다 지쳐 돌아오는 길에
これで 靑春も 終わりかなと つぶやいて
이걸로 청춘도 끝나는구나! 라고 중얼거리며
あなたの肩を ながめながら
당신의 어깨를 지그시 쳐다보니
やせたなと 思ったら 泣けてきた
야위었구나! 하고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났어요
大阪で 生まれた 女やさかい
오사카에서 태어난 여자니까
大阪の街 よう 捨てん
오사카의 거리를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
Jay
"이런 합창을 듣게 될 진 몰랐어요. 이건 진짜 눈물을 닦야아겠는걸요."
오사카 세 분들:
"와, 같이 불러주실 줄 우리도 몰랐어요. 이건 우리 여행에도 느낌표네요."
그리곤 다시 잔이 오간다. 노래와 통성명, 그리고 여행과 음주의 이유를 꺼내어놓는 자조섞인 고백의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공고해진다. 그러니까 친구는 시간이 아니라 상황과 공간이 주는 선물이다. 다시 만나지 못할 지라도 이 날, 이 시간 우리는 즐거웠으니까.
일어서며 떠나는 오타루와 오사카의 친구들. 모두의 뒷모습을 배웅하는 술꾼의 우직함이 처음으로 자랑스러운 날. 마지막 잔에 몇몇 이름들을 날숨으로 뿜어내곤 나도 의자를 떠난다. 여행은 겨우 의자에서 일어서는 그 순간 그 용기로부터 시작되는 거란 걸, 그래서 우리는 모두 지금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란 걸 되새기며.
오타루의 겨울에 생각도 마음도 오래 묶여버릴 것같은 이 불안하고 분명한 평화로운 짐작만을 남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