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가 우리 사회에, 전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처럼 우리 집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되었다. 그 덕에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않고 집에서 원격 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년별로 등교하는 일정이 나오고 두 녀석이 교대로 등교하는 날도 있었지만 함께 집에 있는 날도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학부모님들은 동감을 하실 텐데 방학에 집에 있는 아이들을 케어하는 일은 보통 힘이 든 게 아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다시 개학해서 등교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원격 수업이라 이게 언제 끝이 날지 알 수가 없었다.
하루 세끼를 모두 챙겨주고 밖에 잘 나가지도 않으면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건 정말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들과 밖에 나가는 건 영어 학원 가는 하루 한 번뿐이었다. 영어 학원은 그나마 클래스별로 아이들 다 분리하고 소독도 철저히 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계속 보냈었다.
육아휴직 시작하고 처음으로 일하러 가는 엄마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언제 이렇게 하루 종일 애들과 붙어 있을 수 있을까 싶고 애들이 나중에 지금의 이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생각해보면 현재의 시간에 최선을 다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육아휴직을 시작하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케어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이외에도 나 스스로 몇 가지 목표를 세웠었다. 첫 번째는 운동하고 식이 조절해서 살을 빼는 것, 두 번째는 기사시험 응시해서 합격하는 것, 세 번째는 목표로 하는 내년 시험 대비해서 공부하고 합격하는 것, 네 번째는 몇 번 걷다가 중단한 제주도 올레길 완주하는 것이다.
이런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내가 현재를 치열하고 살고 있는가? 애들 케어한다는 핑계로 다른 일들을 뭉개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된다.
주말에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마치 태풍이 부는 것처럼 불었다.
비오고 태풍같은 바람 덕분에 깨끗해진 하늘
그 덕분에 하늘은 오랜만에 깨끗하고 청명한 하늘이 되었다.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비 오고 세찬 바람이 불고 있어도 이를 이겨내고 나면 깨끗한 하늘이 나타나는 것처럼 괴롭고 끝이 없을 것 같은 고난도 이를 이겨내고 나면, 견디고 나면 청명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떤 어려움을 극복하고 내가 이루어낸 성과들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예전에 어디선가 누에고치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명주실을 뽑는 누에고치는 알 → 애벌레 → 번데기 → 나방의 순서로 자란다. 그런데 어느 한 실험실에서 누에고치가 나방으로 부화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여러 개의 누에고치 중에는 이미 나방으로 부화한 고치도 있었고 아직 나오지 못한 고치도 있었다. 한 학생이 고치를 관찰하다가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나방이 나온 고치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었다. 도대체 나방이 이 작은 구멍으로 어떻게 나왔을까 싶을 정도록 작은 구멍이었다. 다음날 구멍을 통해 나오는 나방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구멍이 너무나 작아 도저히 나방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데 나방은 긴 시간 동안 몸부림치면서 그 작은 구멍으로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학생은 왠지 나방이 가엽다는 생각에 나방이 좀 더 쉽게 고치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가위로 구멍의 크기를 조금 크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그 나방들은 큰 어려움 없이 고치에서 나와 날개를 펼쳤다. 그 학생은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뒤에 생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작은 구멍을 힘들게 나온 나방들은 날갯짓을 하면서 공중으로 날아오르는데 가위로 구멍을 넓혀준 나방들은 날갯짓을 하지만 날지 못하고 비실비실 쓰러져 버린다.
나방은 작은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애쓰면서 날개에 힘이 길러지고 젖어있던 물기가 마르면서 자연스럽게 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되지만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나방들은 고치에서 쉽게 나왔지만 날수가 없었던 것이다.
삶을 살다 보면 힘들어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고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을 마주하기도 한다. 물론 힘들지만 어떨 때는 포기하고 싶겠지만 안간힘을 써서 좁은 구멍을 나오면 날아오를 수 있다. 또 그런 희망으로 또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다. 아자! 아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