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드라 Dec 11. 2020

아빠! 배고파, 아빠는 호구

아빠는 호구

호구 (虎口)

1. 범의 아가리란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바둑에서,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코로나 확산세가 증가하면서 초등학교 4학년 딸과 2학년 아들 두 녀석 다 등교하지 않고 집에서 원격수업을 하게 되었다. 학교는 물론이고 학원도 일정기간 휴원을 하게 되면서 두 녀석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게 되었다. 아차피 겨울 방학이 다가오고 있어서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종일 동거가 시작되었다. 방학에는 학원이라도 갈 수 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고정적으로 가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벌써 올해 초에 경험해 봤지만 다시 이 상황이 닥치자 막막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이들과 집에만 머무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건 나도 갑갑한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그런데 또 집에만 계속 있다 보면 아이들이 밖에 잘 나가지 않으려고 하는 현상도 발생한다.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이 현상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한 번씩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마트를 갔다. 마침 장도 봐야 하고 아이들도 집에서 갑갑해하고 있는 시점에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었다. 사람이 그나마 제일 적은 마트 오픈 시간에 맞춰서 마트에 입성했다. 아이들 마스크 단단히 확인하고 마트에 들어서는데 이 마트를 수없이 다녔던 녀석들 아무 말 없이 자연스럽게 장난감 파트로 사라지고 없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장을 보고 있었는데 아들 녀석이 나를 찾아왔다.


"아빠! 장난감 하나 골라도 돼?"

"안돼"

"왜? 하나만 사줘. 하나만."

"크리스마스 선물로 게임기 사줬잖아. 그리고 마트 올 때마다 장난감 살래? 자꾸 그러면 안 데리고 온다."

"쳇"


 지금 보다 조금 더 어릴 때는 마트에 가자고 하면 눈에 불을 켜고 따라오던 녀석들이 이제는 엄마, 아빠만 다녀오라고 하고 잘 안 따라오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로 계속 집에만 있어야 하는데 조그만 장난감을 하나씩 사줄걸 그랬나 싶었다. 그리고 욘석들도 어느정도 알고 있다. 마트에서 둘이 애교를 떨면 아빠는 한 번씩 넘어가준다는걸...그래서 아이들에게 다시 가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하나씩 골라보라고 했다. 금액은 인당 5천 원 한도였다. 끼얏호~ 쾌재를 부르고 각개전투하듯이 흩어져서 장난감을 고르러 갔던 두 녀석이 곧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내게 왔다.


 5천 원짜리는 살게 없단다.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장난감 코너에 가서 이리저리 살펴봐도 정말 살게 없다. 아마 와이프가 있었다면 '그러면 사지 마라'라고 했을게 뻔한데 호구 아빠는 또 이럴 때만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서 한도 상향. 한도를 1만 원으로 올려주자 다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그리고 정확히  만 원짜리 장난감 두 개를 들고 왔다. 순간 와이프의 표정이 떠올랐다.


'다른 거는 칼 같은 사람이 애들한테는 왜 그렇게 호구야?'


 이 각박한 세상에 아빠라도 한 번씩 호구가 되어 줘야지. 물론 와이프가 그걸 몰라서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거다. 괜히 나를 놀리려고 하는 말이다. 물론 아이들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가끔 아빠는 호구가 되어도 기분 괜찮다.



작가의 이전글 아빠! 배고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