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요
그제야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교실에 가려면 현관에 계신 선생님에게 사유를 설명하고 출입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아마 겪어보지 않은 낯선 상황이 딸내미를 주저하게 만들었고 교실에 가보지도 않고 상황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듯했다.
문득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지금의 나의 성향을 보면 전혀 연관되지 않지만 어릴 적 나는 유독 부끄러움이 많았고 낯선 상황을 두려워했다. 어머니랑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엄마 뒤에 숨기 바빴기에 연세 많으신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혼도 많이 났다. 한 번은 유치원을 가기 위해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버스가 좀 늦었나 보다. 매일 오던 시간에 버스가 오지 않자 나는 당황했고 울면서 집으로 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나를 엄마는 혼내지 않고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안아주셨다. 그 후에 나의 그런 성향을 고쳐주려고 하셨는지 웅변학원을 다니면서 외향적인 성향으로 많이 바뀌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우리 딸에게도 기다려 주기로 했다. 학교 현관까지는 따라갔지만 그 이후에는 딸내미가 알아서 하도록 기다렸다. 아빠가 뒤에 있어서였을까? 현관에서 입장을 통제하고 있는 선생님과 얘기를 하고 딸은 교실에 가서 빌린 도서관 책을 가지고 왔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들을 어른의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지적질하는 것보다 기다려주면 알아서 제 자리를 찾아오고 어른들의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짧은 순간의 행동이 어른이 보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적질하면 반항심만 생긴다. 이런 성향은 사춘기의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마흔이 넘은 나도 무엇인가를 하려 하는데 옆에서 잔소리하면 하기 싫다.
딸의 성향이 조금 더 외향적이면 좋을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외향적일 필요는 없다. 혹시나 나중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줄 정도라면 좀 더 고민을 하겠지만 그런 정도는 아니니 뒤에서 기다려보자. 그러면 자기 삶의 책을 찾아서 웃으면서 아빠에게 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