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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Dec 19. 2020

늦었지만 괜찮아, #3. 어머니

#3. 어머니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와 어머니,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아버지도 몇 달 동안의 병간호로 많이 지치셨다. 그래서 내가 어머니와 함께 자고 아버지는 안방에서 혼자 주무시게 했다. 어머니는 고통 때문인지 거의 주무시지 못했고 물을 드시는 것부터 화장실 가시는 것까지 옆에서 도와드리지 않으면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새벽에 어머니가 필요한 게 있으셔도 내가 너무 곤히 자니깐 깨우지 못하시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머니가 필요하신 게 있으셔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내가 일어나서 도와드려야 하는데 나는 잠에서 깨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아버지와 자리를 바꿔서 아버지가 어머니와 주무시고 나는 작은 방에 가서 따로 잤다. 근데 이게 또 나는 너무 죄송했던 기억이다.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내가 옆에서 도와드릴 수도 있었는데 그깟 잠을 못 이겨서 피곤하신 아버지께 더 짐을 지워드린 것 같아서 말이다.


 그즈음에 어머니는 거의 식사는 못하셨고 주사에 의지하고 계신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와 내가 상 차려서 밥을 먹고 있으면 대리만족이 되셨나 보다. 된장찌개를 먹고 있으면 이나물 저나물 넣고 비벼 먹으면 맛있다고 그렇게 먹어보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가 대리만족이라도 하시라고 양푼이를 가져와 어머니 말씀대로 비벼서 먹고는 했다. 그렇게 비빔밥을 만들어서 먹다가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음식도 제대로 드시지 못하시는 지금 상황이 너무 기가 막혀서 그대로 울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본인 몸이 많이 아프신 상황에도 항상 형과 나를 걱정하셨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본인 몸을 걱정하고 챙기셔야 하시는 상황에 자식 걱정을 더 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나도 아이들 낳고 키워보니깐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어머니는 불교신자 셨다. 절에 가시는 것을 좋아하셨고 항상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나는 사실상 무교이지만 누군가 종교가 뭐냐고 물어보면 불교라고 대답한다. 어머니 생각에 그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그래야 내 마음이라도 조금 편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손목에 작은 염주를 차고 다녔다. 이유는 어머니가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아마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학교에서 모여서 축구 경기를 보기로 해서 수업을 마치고 가는 길에 그 염주 팔찌가 끊어졌다. 몇 년간 쓰던 것이라 낡아서 끊어졌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휴대전화가 없어 삐삐를 쓰던 시절이었다. 축구 경기가 끝나고 삐삐를 확인하는데 빨리 연락하라는 아버지 메시지가 수십 개가 와 있었다. 바로 아버지와 통화 연결이 되어서 통화를 하고 미친 사람처럼 달려갔다. 


 그리고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아버지와 친척분들이 와 계셨다. 이모들은 울고 있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어머니가 누워계시는 침대로 가셨다. 그리고 어머니를 한 번 불러서 깨워보라고 하셨다. 내가 보기엔 어머니는 자고 계신 듯 기척이 없으셨다. 


 "어머니 주무시는데 왜 깨워요." 그랬더니 아버지께서 말씀을 잇지 못하셨다. 그래서 어머니 옆으로 가서 조용히 어머니를 불러 봤다.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다. 목놓아서 어머니를 불러봐도 대답이 없으셨다. 밤이 깊어서야 형이 도착했고 어머니는 마찬가지로 형의 부름에 대답하지 못하셨다. 그렇게 밤새도록 울었다.


 그래도 다음날은 밝았고 아버지는 우리에게 마음의 정리를 하라고 말씀하시고 장지를 알아보시는 등 준비를 하셨다. 의식은 없으셨지만 입으로 물을 흘려서 넣어드리면 받아먹으셨다. 그렇게 옆에 있다가 문득 어머니가 편해 보이셨다. 옆에 있던 내가 어머니 숨을 확인했고 곧이어 응급 심폐소생을 시행한 후, 의사의 사망선고가 이어졌다. 아버지와 형이랑 부둥켜 앉고 하염없이 울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하늘의 별이 되셨다.


 아마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라서 그런지 그날의 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내 머릿속에 쭈욱 흘러간다. 벌써 22년이 지난 일인데도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어머니 생각에 오랜만에 눈물을 흘려 본다.




  '엄마, 사랑합니다. 그렇게 빨리 가시려고 형과 나한테 넘치는 사랑을 주셨구나 생각해봅니다. 엄마 사랑 덕분에 잘 자랐고 형이랑 나도 자리 잡고 애들 낳아서 잘 살고 있습니다. 엄마 계셨으면 손자 손녀들 정말 이뻐하셨을 텐데 말이에요. 아버지도 건강하게 잘 계시고요. 엄마 아들로 태어나서 너무너무 고맙고 행복했어요. 내세가 있다면 그때도 꼭 내 엄마로 있어주세요. 그때는 지금 못한 아들 노릇 꼭 잘할게요. 그리고 꼭 건강하시고요. 사랑합니다.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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