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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드라 Jan 28. 2021

늦었지만 괜찮아, #4. 아르바이트

#4. 아르바이트

 2001년 7월 군을 제대했다. 학교 복학은 1학기에 하기로 해서 복학하기 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놀면 뭐하나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 당시에는 알바천국 같은 어플이 없어서 아침에 벼룩시장 같은 정보지를 한 아름 가져와서 살펴보고 동네 산책하면서 전봇대나 가게 앞에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구한다는 전단지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와~ 나도 옛날 사람...


 저녁에는 친구들하고 놀아야 하니깐 오전이나 오후 시간 때에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는데 이런 아르바이트 자리가 잘 없었다.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마침 집 앞 약국에 아르바이트 자리가 났다. 근무시간은 12시부터 저녁 7시 까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시급이 2~3천 원 정도 했었다. 하루 7~8시간 정도 일하고 일요일 쉬고 한 달 일하면 60~70만 원 정도 받았었다. 


 하는 일은 우선 12시쯤 약국에 출근하면 청소를 했다. 일단 약국에 있는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빗자루로 쓸고 대걸레 빨아서 물걸레 질을 했다. 그런데 제대하고 얼마 안 됐을 때라 청소하나는 기가 막히게 했다. 대걸레 물기 쫙 빼고 닦으면 약국에 계시던 실장님이 일 잘한다고 엄청 칭찬을 해주셨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걸레 물기를 꽉 짜야 청소가 깨끗하게 된다. 제대하고 얼마 안 돼서 열정에 불타던 나는 물기 쫙 빼보겠다고 대걸레를 빨아서 손으로 물기를 꽉 짰다. 그러니 청소가 깨끗할 수밖에... 나중에 내가 복학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때, 나 대신 일할 사람이 두 명이 왔는데 약국 국장님이 내가 혼자 30분이면 하는 청소를 둘이서 두 시간 넘게 하고서도 깨끗하지 않다고 얼마나 뭐라고 하시는지... 아무튼 뭐든 열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청소가 끝나면 재고정리를 한다. 약국에 있는 약들의 재고 상태를 파악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실장에게 전달해준다. 그러면서 처방전을 들고 온 손님이 있으면 처방전을 PC에 입력하고 약 봉투를 출력해서 순서대로 뽑아놓는다. 그리고 손님이 많아서 약 조제가 밀리면 조제실에 들어가서 일손을 도왔다. 약을 조제하는 일은 약사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필요한 약을 찾아 놓는다던지 조제해놓은 약을 포장하는 일들을 도왔다. 약국의 위치가 좋아서 손님이 하루 종일 계속 있었기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일을 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약국의 재정적인 일도 내가 하게 되었다. 은행 문을 닫기 직전에 결산을 해서 그날의 현금을 은행에 입금하는 일도 나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하나 터졌다. 약국에서 일하는 사람은 나까지 총 네 명이었다. 약국 주인인 국장, 그리고 약대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 약사 누나, 약국의 온갖 일을 하시고 주로 영양제를 손님들에게 추천하고 판매일을 하시던 실장,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인 나였다. 원래 약국에 있는 일반의약품을 제외한 모든 약은 약사 이외에는 법적으로 판매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식약청에서 한 번씩 약국에 암행 순찰 비슷하게 온다. 일반 손님 인척 들어와서 약을 달라고 했는데 하필 그때 약사 두 분이 바쁘셔서 실장님이 간단한 약 하나를 손님에게 드렸는데 그게 바로 걸려버렸다. 그 일로 인해서 약국은 영업정지를 대신해서 과태료를 납부하게 되었고 그 금액이 상당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국 국장은 성격이 별로 좋지 않았다. 조그만한 걸로 히스테리를 부리고 성격이 쫌생이였다. 국장의 취미가 검도였는데 오후에 국장이 검도하러 가면 약사 누나랑 실장이랑 시장에서 떡볶이도 사다 먹고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다. 그런데 국장만 약국에 있으면 말도 잘 안 하고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런데 과태료 사건 이 후로 국장은 실장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부렸다. 물론 실장이 잘못해서 금전적인 손해를 끼쳤으니 책임도 있겠지만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아침 실장이 출근을 안 했다. 약을 짓고 약을 파는 것을 제외한 모든일을 실장이 했는데 그가 없으니 그 일들이 모두 내 차지가 되었다. 재고 파악부터 부족한 물품을 도매상에 주문하고 약제비 정산해서 건강보험공단에 신청하는 것까지 내가 하게 되었다. 내가 평소에 실장이 하는 일을 신경 안쓰고 일하는 방법을 몰랐으면 이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려 했는지 모를정도로 국장은 일을 잘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복학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기로한 날짜가 가까워졌다. 그 사이 그나마 약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젊은 약사 누나도 일을 그만두고 다른 약사가 왔다. 나를 대신해 일을 할 아르바이트생도 다시 뽑았는데 두 명을 뽑았다. 뭐야 그럼 내가 두 명이서 할 일을 혼자서 한거야? 뭐 그래도 일이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별 불만은 없었다. 그래도 그 쫌생이 국장이 내가 일을 그만둔다고 회식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동안 일을 너무 잘 해줘서 고맙다고 다시 아르바이트 할 생각이 있으면 꼭 다시 오라고 얘기해줘서 마지막에 조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후,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는 아르바이트는 과외만 했다. 투입 시간 대비 최고의 아르바이트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나도 참 아르바이트 많이 했다. 새벽 세차, 서점, 도시락 세척, 약국, 주유소... 서빙빼고는 왠만한 아르바이트 다 해 본듯하다. 이런 경험들이 지금의 내가 있는 바탕이 되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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