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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day Writer Mar 12. 2024

10. 아들의 야구사랑

내게도 야구인의 피가 흐른다


대전을 연고지로 한 한화 이글스는 언제부턴가 당연하게도 유년기 아들에게 스며들었다.

할아버지를 필두로 이글스의 팬을 자처했던 집안 분위기가 이유라면 이유겠지.


할아버지 옆에서 같이 야구를 보고 자란 아이는 야구장에 가면 고사리 주먹을 쥐고 응원가에 맞춰 흔들어 댔으며, 목청이 터져라 응원을 했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나는 틈틈이 캐치볼을 함께 해주었다.

’ 공을 이렇게 던져봐라 저렇게 굴려봐라 ‘ 주문에 성심성의 껏 응해주었다.


4학년이 되더니 어느 날 내게 전단지를 하나 내밀었다.

’OO 리틀야구‘ 선수 모집.

취미로 하면 안 되겠니? 묻는 내게 아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 선수반‘을 하고 싶댔다.

그럼 어디 한번 해봐라.

무식하면 용감하게도 아들이 리틀야구를 시작하고 그만두기까지 나는 매일 야구장을 쫓아다니는 어미새가 되어야 했다. 근 일 년여 동안 전국 각지를 관광버스를 타고 또는 직접 차를 몰고 아들이 가는 곳이면 같이 가서 응원을 해주고, 아이들 빨래를 하고, 먹을 것을 챙겨주는 서포터가 되어야 했다.


그러더니, 또 어느 날 아들은 이제 그만두겠다고 한다.

나는 잠시 생각이 깊어졌으나, 며칠을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거리다 안색이 안 좋은 녀석에게 내가 무슨 일이냐 묻고 나서야 편지로 자기의 심경을 남겨놓은 아들을 또 생각했다.

사실 내심으로는 다행스럽게 생각했었다.  (나도 고만 내려놓고 싶….)

이 정도 했으면 됐다.


그 이후로 아들은 학교 방과 후 수업 ’ 티볼‘부에 들어가 지역 대회 우승을 거머쥐고 전국대회까지 나가며 리틀야구에서 못다 한 야구에 대한 열정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로는 간간히 친구들과 어울려 캐치볼을 한다던가 야구장에 가는 일들로 채워갔다.


만년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한화를 떠나지 못하고, 어쩌다 한 번씩 우승할 때면 행복해하는 아들


여느 팬들과 마찬가지로 올 시즌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류현진의 복귀가 아들에게도 얼마나 큰 이슈였는지 운전하는 내 옆에서 이야기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떠있다.


이번 시범경기 개막전을 보겠다고 겨우 표를 예매해 집으로 왔다.

추운 날씨에도 이글스 유니폼과 점퍼만 챙겨 입은 채로,

끝나고 전화한 아들은 추워서 못 돌아다니고 바로 오겠다고 하더니 한 시간여를 더 머물며 선수단 퇴근 모습을 지켜보았나 보다.


동생네서 만나 같이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 배팅하고 갈까요?‘

’하고 싶어?‘ ’ 음.. 네!‘

아이고야…

돌고 돌아 배팅장에 가서 팔십 개의 공을 치고, 서른 개쯤의 공을 던진 후에야 몸이 덜 풀렸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야구가 아들의 삶에 푸욱 젖어든 날


돌아오는 길, 낼 아침 운동 가자고 꼬시며 ’ 엄마랑 캐치볼 할 수 있을까?‘ 떠보았다.

평소 같으면 같이 운동하자 소리에 ’ 놉‘을 외치던 아들이 캐치볼이란 소리에 반짝인다.

’할래요?‘ ’해보자. 낼 몇 시에 나갈래?‘

우리는 서로 9시, 10시를 우기다가 9시 30분으로 합의를 보았다.

일요일 아침, 눈뜬 나는 샤워부터 하고 아침을 간단히 준비해 아들을 깨웠다.

시간은 이미 10시가 다 되어 간다.

준비를 마친 아들과 둔치공원에 나가 공원을 반쯤(겨우) 걷고, 캐치볼을 시작했다.

’ 엄마, 내 친구 OO보다 잘하는데요, 강제훈련된 덕인가 봐요 ‘


그렇다 나는 아들에게 훈련이 되었다.

나 제법 잘 던지나 보다. 녹슬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 아들에게 스며든 야구인의 피가 50%쯤 있지 않을까…

아들의 야구 사랑에 들어간 내 지분도 만만치 않으니


그나저나 이제 어깨랑 팔이 쑤시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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