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가 나에게 다가와
흥미로운 일상을 만든다
직장에 출근하면 승용차를 주차한 곳에서 내가 일하는 곳까지의 거리가 걷기에는 조금 어중간하다. 마음이 급하거나 날씨가 궂은날에는 더 멀게 느껴진다. 방법을 찾던 중 작은 딸이 타다가 방치해 둔 자전거를 떠올렸다. 자전거 주차장에 가 보니 타이어는 공기가 빠져 있고 안장엔 먼지가 수북 했다.
쉬는 날.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자전거 앞부분에 짐을 실을 생각으로 무난한 검은색 시장바구니 하나를 달고, 만지자 말자 마른 잎처럼 바스락 떨어져 내리는 손잡이 싸게도 교체했다. 검은색으로. 자전거에 다른 이상은 없는지 여사장님께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도 없고 반응이 미적 하다. 자전거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뭘 물어보냐는 눈치다. 자전거를 타는 데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지에 대한 궁금증 해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직장으로 자전거를 가져가기 전에 오랜만에 자전거 타는 연습을 했다. 집 근처 공원에서 몇 바퀴 돌고 나니 약간 자전거와 친해진 느낌이 들었다. 가족들은 자전거 위에서 뒤뚱대는 나를 보며 불안한지 속도는 내지 말라고 사정을 했다.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하는 나의 실력 때문임을 알긴 안다.
드디어 자전거와 함께 출근한 날. 자전거와 나의 동행은 시작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자전거를 겨우 차에서 꺼내어 타려는데 안장에 올라가서 중심잡기가 왜 이렇게도 힘이 드는지. 평평한 길에서만 탔던 터라 보도블록을 지나가려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자전거를 끌고 갔다. 평평한 길에선 타고, 길이 울퉁불퉁하거나 장애물이 있는 곳에선 곧장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갔다.
자전거는 일반 성인이 타기엔 조금 작은 편이지만 키가 작고 아직 자전거 타기가 서툰 나에게는 딱이다. 막상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로 이동해 보니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자전거 안장에 올라앉으면 안장이 낮아서 무릎이 제대로 펴지지 않고 바퀴가 작고 체인이 낮은 단계에 있어서인지 마음만 급하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특히 전날 산행을 했거나 일 하면서 계단을 많이 오르내린 날에는 자전거가 더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자전거를 끌고 가는 건지, 자전거가 나를 태우고 가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자전거로 매일 지나가는 길이지만 늘 긴장되는 곳이 두 군데 생겼다. 그중 첫 번째 한 곳은 바닥이 갈라지고 약간 경사진 데다가 폭이 좁은 곳. 딱 그곳에 가까워지면 마음부터 주춤거린다. 넘어질 것 같다. 한쪽 벽에 부딪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약간 위로 튀어나와있는 턱을 넘어서는데 중심을 잃고 허둥지둥 겨우 중심을 잡고 안심을 한다. 다행이다. 넘어지지 않았네 하고 마음을 놓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경유하던 긴장되는 두 번째 장소. 그곳에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타고 가고 싶었다. 기분 좋게 좁은 길을 지나 넓은 길로 나오기 직전 정차되어 있는 한 대의 승용차를 보고 그만 중심을 잃고 승용차 앞에 자전거와 함께 꼬꾸라졌다. 아픈 것보다 창피해서 벌떡 일어났는데 글쎄 바지가 찢어졌다. 구멍 난 바지 사이로 상처 난 살갗이 보였다. 난 자전거 사고로 인해 거의 한 달 가까이 연고를 바르고 절뚝거리며 불편한 생활을 했다. 아이들처럼 새살이 빨리 돋았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달리 나이가 들어서인지 상처는 진한 흉터로 남았다. 빛바랜 자전거 타이어처럼.
흉터가 아물 즈음 한 번 더 넘어졌다. 지난번 중심을 잃고 허둥대던 첫 번째 장소에서. 벌떡 일어났는데 때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난 대뜸 안 봤죠? 그 사람은 대답 대신 넘어졌어요, 조심하셔야죠? 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질문만 하고 대답이 없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각자 등을 진 채 지나왔다. 그 사람도 나도 의문만 남긴 채. 오후 내내 일 하면서도 통증을 느끼진 못했는데 손을 씻다가 진하게 멍들어 있는 손바닥을 보게 되었다.
자전거를 탄 지 2개월. 스쳐 지나가는 사람마다 자전거가 힘들어 보인다, 안장을 높여라, 속도가 낮다는 둥 자전거를 향한 성능 향상에 대한 요구사항이 많아졌다. 직장 동료에게 부탁해서 관심받고 있는 자전거의 탈바꿈을 시작했다. 낮은 자전거 안장을 위로 한 단계 올리고, 체인을 한 단계 올렸더니 자전거가 달라졌다. 키가 훌쩍 자란 느낌이다. 종아리가 터질 듯이 힘을 주지 않아도 자전거는 부드럽게 잘 굴러간다. 몸과 마음 자전거가 하나 되었다.
하늘의 구름이 가깝게만 느껴지는 날. 자전거 위에서 앞을 보지 못하고 자꾸 위를 본다. 아차 하고 앞을 보다가 다시 위를 본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멋진 구름 뭉치들이 앞을 보지 못하게 한다. 문득 앞이 아닌 땅으로 눈길을 얹자 자전거 바퀴, 바퀴 안에 갇힌 바큇살, 그 옆에 망사 바구니, 약간 뒤에 나의 모습이 살짝살짝 보인다. 그림자로 비친 바닥은 배경이 되고 그림으로, 사진으로 내 마음에 찍힌다. 검은색 구멍 숭숭 뚫린 망사 바구니의 망사 사이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바닥 세상이 들어온다.
이젠 멋진 가을 하늘에 눈길을 주고, 바람을 마주하며 몸을 맡긴다. 자전거를 타고 서툴게 운전하며 오가는 나에게 엄지 척을 하며 손 인사를 보낸 사람들에게 여유 있게 인사를 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흔들리는 나무를 그대로 느낀다. 천천히 가다가 속도를 높이기도 하고, 구불구불한 길로 가 보기도 한다. 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길을 달려 보기도 한다. 언젠가는 좁은 길, 넓은 길, 포장길, 비포장길 따지지 않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자전거 타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