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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아는 사람 Jan 06. 2022

인생 의자에 앉아서

두 친구가

5살 꼬마 친구 둘이서

무지갯빛 돗자리를 깔고 의자에 나란앉았다. 짧은 두 다리가 들리고 까딱까딱 다리를 흔들어댄다. 한 아이는 흔들리는 두 다리를 보고, 한 아이는 손뼉을 친다. 말 한마디에도 까르르 웃어댈 테지. 보기만 해도 즐거워 보이겠지. 귀여운 그 모습 상상해 본다.     

                     

10대가 된  친구 둘이서

마주 보며 의자에 앉았다. 무슨 얘기를 나눌까.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 부모님의 소망 속에서 침울해지겠지. 고개를 떨군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시기가 되면 걷잡을 수 없지. 서로의 마음은 상큼하고 발랄한데 세상은 공부와 성적의 잣대로 들이대니 답답해 미치겠지. 앞으로 서로에게 다가올 에 대해 얘기를 하다 보면 진지해지겠지. 그나마 함께 할 친구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친구가 최고일 때지.

                  

20대가 된 친구 둘이서

예쁘고 편안한 방석을 깔고 의자에 앉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20대에 들어오니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어깨에 짊어진 짐이 많다고. 한 친구는 본인의 확실한 목표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얘기해 대고, 한 친구는 목표가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얘기한다. 예쁜 것도 갖고 싶고,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싶고, 아름답고 멋진 곳에서 추억도 쌓고 싶겠지. 자기 PR 시대에 살면서 투명하게 보여주는 세대. 생각을 보여주고, 흔적을 보여주고 친화력을 확실히 보여주는 20대. 일에서의 성취감도 갖고 싶고 노는 것도 잘하는 나이. 어쩔 수 없이 취업과 멀리할 수 없는 사이. 사회초년생에게 사회는 거대한 정글 갔겠지. 아마 그럴 거야.

                             

30대가 된 친구 둘이서

의자의 양 끝에 대충 걸쳐 앉았다. 아직 엄마의 자격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서 헤매고 있는데, 학부모가 되어 버렸다고. 엄마도 처음, 학부모도 처음. 처음이라 더 어렵단다. 아이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엄마의 수준도 올라간다는데. 서투른 부모 역할에 아이들과 부모는 각자의 기대감만 부푼다고 한다. 부모가 되어야 하는데 자꾸만 학부모가 되어간다고 속상해하고. 갑자기 평생 학습에 대한 열의가 생긴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

                                  

40대가 된 친구 둘이서

비에 축축하게 젖은 의자 위에 비닐을 깔고 앉는다. 마음도 의자처럼 흠뻑 젖어 버렸다. 살짝만 건드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다고. 꿈 많았던 젊은 날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며 아쉬워한다. 자식과 가정 걱정에 어깨는 쇳덩어리를 얹은 듯 무겁기만 하다. 서로의 눈빛을 교환하며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하더니 메마른 나무를 본다. 메마른 나무를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르른 나무였는데... 이 시간, 이곳이 잠깐의 휴식이라고.


50대가 된 친구 둘이서

의자의 먼지를 맨손으로 쓰윽 닦고 나서 앉는다. 일만 하고 살아서인지 친구가 별로 없다. 좋아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고. 찾지 않았고, 참았겠지. 요즘 들어서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 갑자기 많아졌다고 한다. 둘이서 여행 갈래? 둘이서 맛집 투어? 음. 직장 다니면서 뒤늦게 공부하는 사람도 많다던데 우리 공부 시작해 볼까? 이 나이에 시작하면 좋은 공부가 뭐가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여태 어떻고 참고 살았는지. 참.

                   

60대가 된  친구 둘이서

요가매트를 깔더니 그 위에 방석까지 깔고 의자에 앉았다. 둘은 말을 아낀다. 생각만 한다. 허탈감이 밀려온다. 아이들은 자라서 성인이 되고 각자 자신의 미래를 찾아 떠나고 그 빈자리엔 공허함만이 가득 찬다. 남는 것은 시간이고 없는 것은 돈이다. 한 평생 지 않고 벌어서 이제 겨우 준비한 노후자금. 자식들이 눈독을 들인다. 일어설 수 있는 밑천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남들은 다 해준다며. 아까운 것도, 주기 싫은 것도 아니다. 그 귀한 돈 가져가면서 미안한 마음 없이 너무도 당당한 모습이 괘씸할 따름이다. 다 줘버리면 노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70대가 된  친구 둘이서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폈다. 반듯하게 펴지지 않는다. 둘은 구부정하게 엉덩이를 살짝 얹은 채 먼 곳. 저기 먼 산만 바라본다. 산 너머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그 무언가를 본다. 세월은 검은 머리카락을 희게 만들었고, 팽팽하던 피부와 건강한 몸은 날이 갈수록 쉬어가는지, 상해가는지 늘어나는 주름까지 나이 들어감을 실감케 한다. 다 키운 자식은 각자 살기에 바쁘고, 소식 없는 자식 생각에 보고픈 마음까지 더해 눈에선 싱겁게도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세상 풍파를 견디고 나니 잘못한 것, 미안한 것만 떠오른다며 서로를 마주 본다. 두 눈이 충혈된다.


80대가 된  친구 혼자

한 손엔 지팡이를 짚고 의자의 끄트머리에 겨우 걸터앉았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힘이 없다. 한 친구가 없다. 먼저 갔다. 세월은 그렇게 저렇게 놓고 가고, 가져가고, 데려가 버렸다. 둘이라 좋았던 시절.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하지 못했고,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다 보여 주지 못했고, 같이 가고 싶었던 곳에 같이 가지 못한 곳이 많다. 있을 때 후회 없이 다 할걸 그랬다고 뒤늦은 후회. 친구의 빈자리를 보며 먼저 갔으면 좋았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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