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쓴다

아이들 웃음소리는 글을 쓰게 만드는 묘약

by 나를 아는 사람

손끝에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다. 햇살 좋은 아침 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있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나도 몰래 미소가 번진다. 잊힐까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는다.


큰길 건너, 보일 듯 말 듯 가려진 숲 안쪽에는 학교 운동장이 있다. 아이들은 별일 아닌 것에도 반응을 보인다. 나도 반응한다. 보지 않아도 보는 것처럼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학교 운동장의 아이들 머리 위로 기분 좋은 햇살이 모여 아이들에게 한껏 쏟아질 것 같다. 즐거움이 가득 말이다.


가끔 이런 느낌이 들 때 생각나는 게 있다. 책을 읽다 읽은 내용인데 작가나 제목이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내용은 어렴풋이 생각난다. 작가가 그랬다. 집을 구할 때 일부러 아이들이 보이는 곳으로 이사를 한다고. 순수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글이 써진다고. 흉내도 아닌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은 몇 년 전이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지나가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 담장 너머로 보이는 운동장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신나게 떠들어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멈춰서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이상하게 여겼을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았다.


우리 집 앞 베란다에서 바라보면 학교 운동장이 보이고, 주방 쪽 창밖으론 종합운동장이 보인다. 널찍한 운동장을 보면 마음도 같이 넓어지는 것 같다. 비가 오는 날에는 참으로 비 내리는 날 같고, 눈 내리는 날에는 참으로 눈 내리는 날 같음을 온전히 느낀다. 잊을 수 없는 특별한 날은 여름날 비 내리는 장면이다.


초록 잔디를 촉촉이 적시는 비 내리는 날은 한 폭의 그림이다. 있는 그대로 좋다. 보이는 그대로 이름을 부여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두 눈에 들어온 가득 채워진 모든 것이 그대로 보이는 날이 좋다.


복잡한 생각이 들어찰 여백이 없다. 시간도 그 외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다. 무수한 소리의 혼재 속에서도 듣고 싶은 것은 그대로 들린다. 복잡하게 들리지 않는다. 단순하게 들리고 청아하게 전해져 온다.


짙은 초록으로 둔갑한 식물의 잎사귀가 가느다란 여인의 손끝 움직임처럼 도도하고 우아하게 움직인다. 스스로 움직이고자 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지나가는 바람의 움직임, 속도, 방향에 따라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잠시 휴식을 취한 듯 고요하다가 또다시 합창하듯 다 같이 흔들린다. 또다시 고요. 비장하게 준비한 듯 규칙적으로 쉼과 움직임을 반복한다. 산과 들에 핀 식물은 자연스레 자연의 환경에 발을 맞추고, 집 안의 식물은 집주인의 손끝에서 도움을 받아 성장한다. 환경은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준다.


정지된 듯 움직이지 않던 마음에 움직임이 시작된다. 자꾸만 보이는 것이 문장이 되려고 꿈틀대기 시작한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쓰게 만든다. 쓰고 있을 때는 느끼지 못하는 것이, 한동안 글을 쓰지 않으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전문적인 작가도 아니면서 생각은 평생 글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쓰기는 나에게 평정심을 찾게 한다. 쓰기는 마음 성장에 도움이 된다. 쓰고 있으면 머릿속에 있는 많은 것들이 손끝으로 전해져 글이 되고 문장이 된다. 형태가 없는 것이 형태를 갖추고, 눈 앞에 펼쳐지는 글자가 될 때 감흥이 있다. 새롭게 살아나는 것이 좋다.


잠시 떠오르다 잊히는 수많은 잔재 속에서 진하고 강하게 살아남는 녀석들이 좋다. 깊이 있고 존재감을 느끼도록 문장으로 덧칠을 해 주고 싶어 진다. 올곧은 생각에서 살아난 녀석들의 온기가 더해져 생동감 있는 문장이 될 때 완성미가 보이지 않을까. 이러할 때 비로소 글은 살았다고 말하지 않을까.


여름날 비 내리는 장면 속에 아이들 웃음소리를 담아 풀어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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