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0년 9월부터 환경미화원이 된 사람이다. 환경미화원도 초보, 운전도 초보다. 새벽 4시 30분에 기상을 해서 5시 10분에 불안한 마음으로 이제 겨우 라디오를 들으며 운전할 수 있는 초보운전자다. 며칠 전 출근길 도로 1차선에 여유 있게 앉아있던 큰 개를 만났을 때 난 너무 놀라서 '아휴 깜짝이야!'라며 혼잣말을 했다. 개는 아무렇지 않게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일어났고 난 심장이 멎는 듯했다. 살다 보면 이렇게 평범한 일상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가끔 찾아오기도 한다.
얼마 전에 브런치에 발행했던 '직업은 다르지만 모두가 가치 있는 사람들'이라는 글은 2006년에 타 매체에 글을 썼다가 최근에 다듬어서 발행한 글이다. 2006년 그때까지만 해도 직업에 편견을 두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을 뿐, 내가 미화원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새로운 직업으로 들어선 것은 준비된 나의 선택의 결과물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50세 전후가 되면 직업을 미화원으로 바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50세. 결단의 시간이 왔다. 직업 전환을 위해 우선 20년이 넘게 사용하지 않고 보관만 하고 있었던 일명 장롱 면허증을 꺼내어 사용하기 위해 운전 연습을 시작했다. 그다음 직장을 구했다. 새로운 분야에 적응하면서 운 좋게 브런치를 만났다. 어렵다던 브런치 입문은 한 번에 합격. 그 감격이란. 처음엔 얼떨떨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실감이 났다.
브런치를 어떻게 활용해야 되는지도 제대로 모른 채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브런치를 만났다. 브런치는 글을 발행해 가면서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던 일. 책을 만든다면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첫 번째 브런치 북에 담아서 발행했다. 독자가 읽으면 재미없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늘 소중하게 간직해 온 그 이야기를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꼭 해야 할 숙제를 마친 느낌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생계를 위해서 직장생활을 꾸준히 했다. 작은 사무실에서 경리업무를 하기도 하고, 계약직으로 제조 현장에서 단순한 업무를 하며 몇 년 동안 교대 근무를 하기도 했다. 사람이 먼저일까, 기계가 먼저일까 싶을 정도로 일 속에 파묻혀 살았다. 평일에는 잔업, 휴일에는 특근. 몸이 아프거나 힘들어서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일까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았다. 직장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으니까.
난 꿈이 있었기에 현장에서 야간근무로 피곤하고 지칠 때도 항상 잊지 않으려고 했던 문구가 있었다. '노동을 하더라도 정신은 깨어있어야 한다' 그 꿈에 대한 연결 방법으로 독서를 선택했다. 꾸준히 독서하려고 노력했고 틈틈이 생각나는 글들을 메모해 가는 습관을 가졌다. 어떤 사람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어울리지 않게 책 읽는 척, 고상한 척한다며 꼴불견으로 보는 이도 있었고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언젠가는 꼭 내가 원하는 것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제조 회사에 근무하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 통근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나 보다 훨씬 젊은 미혼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어제 하늘에 구름이 참 예뻤는데 봤어'라고. 그 동료는 '그거 볼 시간이 어디 있어요'하며 쏘아붙이듯 대답을 했다. 평소 대화 속에 부정성이 많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설마 이런 대답을 할지는 몰랐다. 나는 순간 당황했고 말 문이 막혔다. 힘든 노동을 한다는 핑계로 마음의 여유도 팽개친 듯, 아무런 바라는 것 없이 기계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가 없을까. 잠시만 고개 들어 보면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직업인의 삶 속에서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 것은 작은 도서관 봉사활동을 하면서부터다. 우연히 퇴근 후 하게 된 봉사활동은 나에게 책의 재미를 느끼게 해 줬고, 잊고 지냈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인생의 다양한 길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좋아하는 작가와 책도 생겼다. 이오덕 선생님의 '삶을 가꾸는 글쓰기', 김숨 작가의 '철, 국수', 이덕무 작가의 선집에 들어있는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천상병 시인의 시집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에 있는 '소풍'을 좋아하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니 쓰는 것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고, 글을 꾸준히 쓰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글을 실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추천으로 시민명예기자 모집에 응모를 했다. 응모에 합격한 후 시보에 처음으로 원고료를 받으며 글을 쓰게 되었다. 그때 그 설렘과 떨림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지 않은 서툰 나의 글을 읽고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에 대한 기대감과 부끄러움이 있었다. 가끔 나의 글을 읽고 팬이 되었다는 사람을 만날 때는 보람도 있었다.
짧은 글을 쓰면서도 소설처럼 긴 글을 교정하듯 글을 고치고 또 고쳤다. 최종 교정을 마치고 메일을 클릭하고 나면 매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부끄러움이 밀려왔다.(이덕무 작가의 어린아이 혹은 처녀처럼 이라는 글이 생각났다) 시의성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고, 일상에서 사물을 더 자세히 보고 물음표를 붙여가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서부터 더더욱 책과 관련된 일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과 관련된 일을 하려면 필요한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현실에 부딪혔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새로운 직업은 준비해야 할 공부가 필요했다. 공부를 위해서는 시간과 돈이 필요했는데 현재의 직업을 저버리고 공부에 매달리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현실에 맞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아이들이 성장하고 난 다음으로 미뤘다. 머릿속 꿈만 키웠다. 언젠가는 하게 될 꿈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아이들은 성인으로 성장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은 이렇게 바뀌었다. 직업은 퇴근 후 시간적 여유가 있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 환경미화원이 제격이라 판단했다. 환경미화원이 하는 청소라 함은 정해진 장소의 환경을 정리 정돈시키는 일인데, 나는 주변 환경 정리정돈과 더불어 마음의 정리 정돈을 한다.
청소 일을 하면서 근무 시간이 예전 직장보다 짧아져서 퇴근 후 시간적 여유가 많다. 나의 건강과 마음의 환경에 정리할 시간이 그만큼 많다. 여태껏 실천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바라던 글쓰기를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 일하는 과정 속에서 타인을 보며 정신이 깨어나고, 계절의 변화와 기후조건은 나의 육체를 깨어있게 만든다. 느긋함 없이 분주하게 만든다. 이오덕 작가님이 강조하던 '노동을 통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했을 때 환경미화원 일을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 단정한 헤어스타일, 편안한 복장, 편안한 신발이지 않을까 싶다. 하루 평균 만보 이상을 걷는 나에겐 그중에서 장시간 신어도 발을 편안하게 해 줄 신발이 매우 중요하다. 며칠 전 작업화로 쓸 신발을 한 켤레 사러 갔다. 고르고 고른 신발. 신중하게 골라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신발을 선택했다. 웬걸 신발을 신고 출근한 첫날부터 후회를 했다. 걸을 때마다 발가락 통증이 있어서 몹시 불편하고 힘든 하루를 보냈다. 모든 선택은 최선이지 최고의 만족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일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오고 가는 나의 길에는 자연이 속해 있다. 봄이 되어 진한 초록잎 사이로 붉게 타오르는 동백이 삐죽이 나올 때마다 난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내 맘대로 동백꽃을 동백꽃이라 부르지 않고 친근하게 동백이라 부른다. 무겁게 한 송이 한 송이 떨어질 때마다 마음이 쿵하고 떨어지는 듯해서 안타까운 마음 쏟아낸다.
동백이에 관심을 표하는 나를 보며 조금 더 기다려보라는 동료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동백꽃 보다 더 진하고 강한 향을 가진 동백꽃잎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환경미화원이 바라보는 동백은 꽃이 아니라 무거워 잘 쓸리지 않는 쓰레기에 불과하다고.
직업이 바뀐 이후 변한 게 있다면 날씨에 민감하다는 것.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일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좋아라 했던 예쁜 꽃, 이른 아침 이슬 업은 초록 초록한 나뭇잎,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이 쓰레기로 돌변해 보인다. 시선은 그렇게 바뀌어 간다. 적응은 빠르다.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대하는 것이 흥미로워진다. 나의 삶은 무한한 선택으로 채워졌다. 떠밀리지 않았다. 단지 선택했을 뿐. 후회하지 않는다. 지나간 시간 속에서 아주 단단하게 여물어졌기에. 나의 삶은 성격을 닮아서 송곳처럼 뾰족하지 않다. 몽돌처럼 둥글둥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