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의 미학
가끔 고향 집에 다니러 갈 때면 아이들 데리고 일부러 느리고 느린 가장 천천히 가는 기차를 이용한다. 승용차로 가면 편안하게 한 시간 삼십 분이면 가고 버스를 이용해도 두 시간 안에는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를 느긋한 여행을 하고 싶어서 기차를 이용한다.
사천집에서 읍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하며 시내버스를 이용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또다시 진주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기차역에 도착한다. 기차역에 가기 전에 우리가 꼭 들르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맛있는 만두와 찐빵을 파는 작은 음식점이다. 양손 가득 만두와 찐빵을 사 든 아이들은 먹기 전부터 맛있겠다는 얘기를 연거푸 해 댄다.
기차역에 도착해 표를 구매한 뒤 기차를 타기도 전에, 그 맛있는 찐빵과 만두의 유혹에 넘어가 짐 가방 위에 대충 걸쳐 앉아 찐빵과 만두를 모두 먹어버리곤 한다. 찐빵과 만두로 부른 배를 숨기고 언제 먹었냐는 듯이 태연하게 기차역을 배경으로 예쁜 사진 찍기 바쁘다. 지나가는 기차를 배경으로 찰칵 한 장 찍고, 역무원 아저씨를 배경으로 또 한 장, 기다랗게 놓인 녹슨 철길을 뒤로하고도 멋진 한 장의 추억을 만든다.
기차는 자주 이용하는 교통수단은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기차여행을 하는 날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들뜬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 같다. 기차역에서 목을 쭉 빼고 기다린 기차가 역으로 들어오면 아이들은 기차에 올라 기차 내부를 빙 둘러본 후 아니나 다를까 달걀 먹을까, 과자 먹을까, 지난번에 먹은 거 사 먹을까 온갖 먹거리를 떠올리며 벌써 기차 안에서 먹는 음식 맛이 최고라며 간이 음식 판매 승무원을 찾는 눈치다.
기차로 여행을 하면 몸도 마음도 느긋해진다. 살짝살짝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며 많은 것을 떠올려 볼 수도 있고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반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재잘재잘 어깨를 기대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흥얼흥얼 노래도 하고 멋진 모습으로 사진도 찍고 신나서 어쩔 줄 모른다. 기차여행은 아이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추억을 만드는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는 겨울에 내린 눈이 소나무 그늘에 가려서인지 아직 녹지 않아 쌓인 모습이다. 가까이서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스르르 녹아 버릴 것 같은 부드러운 눈이 보기 좋다. 고향 집 마당에도, 비자나무 위에도 눈이 쌓여 아이들이 눈을 직접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쉽지만 기대만 하고 두 눈에 담는다.
간이역을 다 지나도록 기차 안에서 사 먹었던 달걀과 맛있는 음식도 사 먹지 못한 아이들은 상상했던 것을 하지 못해서 아쉬워했지만, 기다렸다 먹으면 더 맛있다며 기차의 목적지인 순천 기차역에 도착해 먹기로 약속을 하고 아쉬움을 달랬다.
기차역에 도착해 잠깐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순천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여수로 가는 승차권을 구매한 후 버스에 올랐다. 몇 번의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마지막 버스를 탔다. 아이들은 기사님의 사투리가 우습다며 재미있어했다. 아이들은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탈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 말투가 서로 다른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하다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과 고향 집까지 걸어서 가고 싶었지만, 생각뿐이고 짐이 있어서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고향 마을에 가까워지면서 멋진 바다 풍경과 어릴 적 먼 거리를 걸어서 학교 다닐 때, 뾰족뾰족한 바위틈으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고드름을 떠올리며 자꾸만 눈길이 높은 벼랑 쪽을 향하는데 아이들의 눈은 푸른 바다를 향해 있다.
시골집에 도착하니 부모님은 왜 이렇게 늦었냐고 걱정을 하신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진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한참이나 늦었으니 그럴 수밖에. 중간중간 쉬고, 걷고, 먹고, 보고, 얘기하고 기다리며 3시간이 넘게 걸리다 보니 걱정할 수밖에 없다. 비록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아이들과 이렇게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며 여행을 하다 보면 작고 소담한 추억들이 차곡차곡 아이들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운전면허증이 있으면서도 평소 걷거나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현대인들은 바쁘고 편리한 쪽을 택하다 보니 가까운 거리도 승용차를 꼭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습관이 되어있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편리한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걷기를 하다 보면 승용차로 순간 지나갈 때는 쉽게 보지 못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키 작은 꽃나무의 하루하루 다르게 피어나는 꽃송이의 숫자도, 아이들의 반가운 인사도, 어른들의 다정한 인사말도, 자연의 작은 변화도 걷지 않으면 잘 느끼지 못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교복 입은 예쁜 학생들의 사랑스러운 모습도, 짐을 가득 싣고 이른 아침부터 장터에 가는 시골 사람들의 풋풋한 삶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엄마 무릎에 앉아 흥얼흥얼 노래하고, 질문하고 엄마는 그 질문에 답하기 바쁘고 이 모든 일상의 모습들은 우리 삶에 스며든 일부분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 나만이 아니라 우리는 서로의 삶을 보며 거울에 본인의 얼굴을 비추듯, 바라보고 느끼며 느긋하게 함께하는 삶을 그려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