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없이 단순하게 살아보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걱정이 없다, 급한 것이 없다. 걱정이 없어서 흰머리카락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은 우리 가족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난 맞다고 장단을 맞춘다. 맞는 말이니까.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살면서 바뀐 것이다. 나의 성격은 소심한 데다 늘 걱정이 많았다. 뭐든 정리정돈이 되어 반듯해야 했고, 완벽하지도 않은 나였지만 약간의 완벽증과 의심병도 있었다. 어떤 말을 들어도 일단 물음표가 생겼다. 왜, 왜 그러지? 자꾸 생각했다. 믿지 못해서. 걱정이 많다 보니 깊은 잠에 들기 힘들었고, 수면 부족으로 신경은 예민해지고 소화불량이 자주 생겨서 소화제를 수시로 복용했다.
딸들의 교복은 다림질을 해서 늘 반듯반듯해야 했고, 남편 셔츠도 마찬가지였으며, 나의 작업복도 다림질로 구김이 없어야 했다. 난 그 반듯함을 마음가짐이라 생각했다. 누구에게서, 어떤 계기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휴일이 되면 다림질로 항상 바빴다. 옷을 다림질하고 남은 열로 손수건도 다렸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던 나에게 그 반듯함은 당당한 마음가짐이라 착각하며 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건조대에 빨래를 널 때, 수건 길이는 서로 같아야 했고, 손수건의 길이도 맞아야 했다. 양말은 짝을 맞추어 같은 방향으로 널려 있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뭐하는 행동인지, 왜 그래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숨 막히게 살았다. 책꽂이에 꽂힌 책은 질서가 있어야 했고, 현관 신발도 항상 정리가 되어 있어야 했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을 시키면 그 사람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해서 내가 나서서 해야 했다. 정말이지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어 스트레스 제대로 쌓이게 만드는 행동을 했다. 나를 비롯한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항상 피곤할 수밖에 없다. 생각이 많고 뭐든 자기가 해야 직성이 풀리고 믿을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몇 배로 힘들다.
걱정스러운 생각을 자꾸 한다고 해서 풀리지 않는 걱정거리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생각이란, 생각할수록 생각나는 것이 생각이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중학교 때 친구가 작은 메모지를 붙여서 적어 준 글인데, 뒷면에는 초원의 빛이라는 시도 읽어 보라고 적혀 있다.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꺼내어 봤던 글이다.
놀이로도 많이 애용했다. '생각'이라는 글자가 몇 개나 들어가는지 알아맞히기 게임. 자꾸 들으면 들을수록 입에 붙지만 개수는 헷갈린다. 나는 걱정하며 사는 것 대신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얽히고설킨 일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술술 풀릴 때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난 어느 날부터 마음을 바꾸면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교복에 구김이 좀 있으면 어떻고, 건조대에 널린 빨래가 좀 삐뚤게 널어놓는다고 해서 큰일 날 것도 아니다. 일부러 양말을 짝이 맞지 않게 널어 봤다. 수건도 길이가 맞지 않게 널고, 책은 놓고 싶은 대로 책상 위에도 한 권, 소파 위에도 한 권, 침대 머리맡에도 한 권, 책꽂이에도 높이 상관없이 모두 섞어 버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책을 가까이에 두고 있으니 더 읽고 싶어지고, 책 찾는 재미가 있었다. 모든 것은 나의 마음 일뿐이었다. 달라질 건 없었다. 마음이 아무 반응 없이 편해졌다.
현재 나는 옷에 다림질 한 지 오래되었고, 젖은 양말의 짝을 맞추어 널지도 않는다. 성격은 소심하고 말수가 적던 것과는 거리가 먼 수다쟁이로 변했다. 남들보다 음식을 자주 먹지만 소화는 잘 되고, 커피를 마시면 잠이 잘 오지 않던 내가 믹스 커피 몇 잔을 마셔도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잔다. 정해진 나의 기상시간 전에는 잠에서 깨지 않는다. 아주 잘 잔다.
단순하게 산다.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산다.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순리대로 살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나에게 답답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난 지금 이대로가 좋다. 오늘도 걱정없이 단순하게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