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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아는 사람 May 19. 2021

청춘들은 서울로 향하고

실체 없는 무언가를 찾아서

한 밤의 화려함은 낮이 되면 그 실체가 드러난다. 발길을 유혹하는 불빛들은 입구의 노란색을 입고 있는 출입문 시트지에서부터 내부의 모든 물체는 노랑이 된다. 술과 사람들의 높고 낮은 목소리, 화려한 조명은 한 편의 연극에 필요한 소품이 되고 분위기를 이끄는 음악에 도취되어 순간을 즐긴다.


아침이 되어 실망의 눈빛과 어지러움은 밤새 즐긴 분위기와 공간이 허상임을 알게 된다. 조명에 맞춰 입구의 화사한 나무와 실내의 꽃들은 생명이 없는 생명이 될 수 없는 낡고 바랜 조화들로 즐비하고, 조화만이 조화롭게 시간을 달린다.


도심은 젊은이들을 보이지 않는 희망으로 끌어당긴다. 어깨가 부딪힐 것 같은 북적거림과 분주함이 살아 있음과 열정이라 생각한다. 꿈을 향한 거친 숨소리는 서울이라는 지역에 대한 동경으로 찾게 만든다. 회색빛 도시는 그들에게 부르짖고 있다.


'어서 와, 이곳에서 꿈을 찾아라'라고 말한다.


서너 평도 안 되는 좁은 집에서 꿈을 꾸고 희망을 품은 채 아침이면 인파 속으로 섞여 당당하게 스며든다. 풍족한 것은 사람들이고 부족한 것은 돈이다. 꿈에 부푼 희망으로 찾아온 서울. 서울살이에서 지불해야 것은 많다. 새로운 생활로의 적응에 마음을 추슬러야 하고, 치솟는 방값 앞에서 좌절해야 하고, 자유롭게 쓰던 사투리는 괜히 촌스러워 대화가 자유롭지 못하고 어색해진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의 사투리가 귀엽다며 자꾸 사투리로 말하길 권하지만, 사투리 대신 서울말을 배워 본다. 서울말만 할 줄 알면 서울 사람이 되는 것처럼.


지방에선 조금 손해 봐도 그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서울에선 통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서울 사람들을 이기적이라 말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들은 합리적으로 사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피해받는 것도 싫어한다. 치열하고 복잡한 경쟁 속에서 터득한 삶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작지만 잠잘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자신의 공간을 둘러싼 윗집, 아랫집, 옆집으로 스며든 또래의 젊은이들. 서로를 마주 보며 위안을 찾는다. 다 같이 힘든 삶을 산다고 생각하면 힘이 생긴다.


어느 집, 어느 방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 낮에는 잠을 자고 깊은 밤이 될수록 소리 높여 노래 부르는 사람들. 방바닥에 살며시 귀를 대면 조금 더 커지는 노랫소리. 같이 듣고 흥얼거리기까지. 흥얼거리던 노래는 잠이 들수록 자장가가 되어 꿈속으로 스며든다. 아침이 되어 움직임의 소리가 나면 아직 살아 있구나!, 달그락달그락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와 물소리가 나면 한 끼 해결했구나! 같이 느낀다. 소리를 소음이라 생각하지 않고 '아주 편한 숨'이라 생각한다.


지방에서 누리는 여유와 공간에 대한 무한한 편안함을 버린 채 서울살이를 택한 청춘들. 살면 살수록 삶이 힘들어지고 허탈감이 밀려 오지만 포기하지 못하고 희미한 희망에 대한 실체를 찾아내기 위해 서울에서 정착하려고 한다. 뿌리 내려서 살고 싶어 한다. 지친 하루하루가 연속되어도 그 속에서 자기만의 행복을 찾고 만족감을 한층 더 느껴 보려고 한다.


힘들지만 본인이 선택한 길이기에 억울해하거나 남을 탓할 수도 없다. 벗어나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것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삶의 기대. 그것 때문이 아닐까. 서울에 대한 동경. 지방에서 제대로 접하지 못한 다양한 혜택, 문화의 공간을 굳이 찾을 필요 없이 눈에 보이는 것이 문화가 되고 살아가는 삶이 작품이 된다. 잘 정돈된 공원과 주변시설.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편리함의 산실. 돈으로 치러야 하는 혜택이지만 청춘들은 그 편리함에 점점 빠져들고 있다.


청춘들은 좀 더 이른 나이에 서울에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지방에서 태어나지 않고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달라졌을까 상상해 본다. 자기 집만 있어도 이렇게 힘들진 않을 텐데. 월급의 대부분이 월세와 생활비로 들어감에 아까워한다. 하지만 다른 어떤 곳 보다 서울에서 시작하려 한다. 꿈에 대한 선택의 폭이 당연히 많을 거라는 긍정적 자세를 취한다. 서울로 몰려드는 청춘. 줄어드는 지방 청춘.


가난한 청춘에게 허기가 찾아오면 더 서럽고 견디기 힘들다. 고 맛있고 양까지 푸짐한 곳을 찾기 마련. 잘 찾아보면 스무 개가 넘는 다양한 메뉴를 골라 먹을 수 있는 밥집있음이 다행이다. 가격은 오천 원으로 동일.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밥. 그 밥의 양에 놀란다. 보기만 해도 배 부를 만큼 푸짐한 밥을 보면 돈 없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푸근해짐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는 혼밥이 절대 어색하지 않다. 대부분의 손님은 혼자이기 때문에 둘, 셋이 함께 오면 오히려 어색할 정도다.


거리에 나서면 청춘들을 끌어당기고 솔깃하게 만드는 작고 소담한 간판들. 그 속에 청춘을 대변하듯 드러나는 자유분방함. '밥 먹고 합시다. 휴일은 내 맘대로', '어쩌다 가게', '놀다 가게', 보는 것만으로도 자유에 도취되어가는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 이 도시에서 이루어 낼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돈이 없어서 불편함은 청춘이라는 젊음의 무기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년, 3년만 견뎌내면 서울살이 성공했다고 자신을 다독인다. 용감하고 열정 많은 청춘들이 혼재하는 서울의 거리. 북적거리면 북적거릴수록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청춘들. 새로움의 시작, 그들은 서울이라는 곳을 자신의 취향저격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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