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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아는 사람 Nov 04. 2021

정상(頂上)으로 가는 길

아, 그 길 말이군요


소리 소문도 없이 안락한 집에서 나와 어딜 가기에 그렇게 바쁜가요, 멀리 가나요. 누굴 만나러 가는 건가요. 지나갔던 이 길로 언제쯤 되돌아올 건가요. 마음의 집으로.




길을 나섰던 거리엔 가을을 느낄 만큼 단풍이 물들었나요. 물론 햇볕의 사랑을  듬뿍 받은 나뭇잎이 더 예쁘고 화려 하겠죠. 바람은 어떤가요. 조금 불던가요. 옷깃을 세울 정도, 아니면 더워서 접어 올린 옷소매로 손등을 가려야 할 정도. 입고 간 조끼의 단추를 하나씩 둘씩 풀 정도. 대답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집에서부터 딴생각을 하며 걸었군요.


산을 장식한 봉우리들의 모습은 생각나나요. 산과 산 사이의 깊은 계곡물은 기억 하나요. 보기엔  차가워 손도 못 댈 것 같아도 물속은 은근히 따듯하죠. 큰 바위, 작은 바위 부딪치며 상처 투성이지만 끊임없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는 들었겠죠. 며칠 전부터 내린 비로 산은 촉촉이 젖었을 테니까. 이런 물소리는 눈을 감고 들어야죠. 설마 눈을 뜨고 들었나요.


다음부턴 산을 느끼고 싶거든 눈을 감은 채. 풀향을 맡으며 귀를 열어봐요. 소슬바람에 서로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 풀잎이 있고, 맥없이 툭툭 떨어지는 나뭇잎이 푹신한 낙엽  위에 슬쩍 소리를 얹어요. 바람과 낙엽은 서로의 외로움을 감싸주죠.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산길을 지나가다 심심해하는 넓적 바위를 만나거든 딱 한번 만이라도 누워봐요. 그냥 지나쳤죠. 그럴 줄 알았어요. 앞으로는 잠시 누워서 마음을 맨 밑바닥까지 낮춰봐요. 매일이 불안하고 바쁜 일상을 잠시 쉬게 할 수 있어요. 믿기 힘들다고만 하지 말고 일단 누워 봐요. 어서. 누워서 샛노랗게 갈아입는 단풍의 신비로움을 느껴봐요. 산새들의 콧노래를 엿들어 봐요. 헛헛한 마음이 따스함으로 채워질 거예요.


정상을 향해 오를 땐 일상을 잊어버려요. 어차피 산을 오르는 것은 풀어짐이죠. 모으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것을 흩뿌리기 위함이죠. 자, 좀 더 올라가 까요. 앞만 보지 말고 탁 트인 언덕쯤에서 아래를 요. 바로 아래 말고 저 멀리 넓게 더 넓게 펼쳐진 풍경을 봐요. 자연은 우리에게 독촉하지 않아요.


동산은 아닌 것 같고 우뚝 솟아 있는 언덕이 하나 보이죠. 사람들이 만든 언덕인데 한 송이 탐스런 꽃처럼 호수의 중앙에 자리 잡았죠. 언덕에 사람이 끊이지 않죠. 뭍에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줄지어 앞만 보고 돌고 돌아가네요. 누가 시켰을까요. 한 가지 딱 한 가지 모두의 바람이 정상에 있는 것 같네요. 언덕은 이상하게도 올라가라고 하는 것 같죠. 앞사람만 보고 그냥 따라가네요. 오르고 내림에서 부딪침이 없는 언덕이죠.


오르막이라고 끌어당기거나 뒤에서 밀어 올려 주지 않아요. 그냥 개척이죠. 가면 돼요. 하던 대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기 속도로 올라가면 되죠. 누군가 앞서가려고 하면 살짝 비켜 주세요. 먼저 보내면 요. 어때요. 아무렇지 않죠. 전혀 급할 것 없다니까요.


곧 정상에 도착할 것 같아요. 긴장되나요. 왜 그래요. 긴장하지 마세요. 아니 기대가 크다고요. 너무 큰 기대는 실망도 그만큼 클 수 있으니까 침착하고. 정상 바로 아래가 가장 힘든 거 알죠. 이쯤에서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면 다시 시작해야 해요. 알겠죠.


자. 드디어 정상 도착. 무엇이 보이나요. 여태 찾아서 헤매던 당신의 보물이 거기 있나요. 만났나요. 언제부터 정상에 있었다고 하던가요. 당신만 몰랐나요. 벌써 정상에서 내려가려고 하나요. 찾았군요.




당신이 찾던 정상(그 이상 더없는 최고의 상태)은 늘 곁에 있었다고 하네요. 실상 최고의 상태를 뒤집으면 최저 상태. 중심선의 양끝. 딱 달라붙어서 하나인데. 생각해 봐요. 우리가 사는 매 순간이 정상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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