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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n 20. 2023

 두 번째 도서관 답사에서 만난 윤선생님과의 인연

평일이다. 회사 휴무일이라 이번엔 혼자서 도서관 재답사를 해보려고 한다. 남편이 운전하고 조수석에 앉아서 진양도서관에 갈 때 보다 훨씬 떨린다. 운전 시작 한지 3년째지만 혼자서 인근 지역에 운전하기는 처음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처음은 무슨 일이든지 떨리는 것 같다. 전날 회사동료들에게 부탁해서 약도를 설명 듣고, 내비게이션까지 켜고 출발한다. 유난을 떤다. 누가 보면 몇 시간짜리 장거리 운전이라도 하는 줄 알 거다. 아무튼 준비는 철저하게 한 후 출발 한다. 남편 차에 동승해 다닐 때는 자세히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진하고 크게 보인다. 글자도 건물도. 준비를 철저히 해서인지 가는 길에 동료들이 설명해 주던 졸음쉼터가 보이고, 굴다리도 보인다. 갈림길 글자도 정확히 보인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내려와 좁은 국도에서도 재방문 길이라 그런지 도서관에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비로소 안심이 된다. 이제부터는 고속도로도 혼자서 운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자판기 커피라도 한잔 마셔 볼까 싶은 마음에 두리번거린다. 그때 마침 주차장 위쪽 벤치에 한 여성이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기쁜 마음에 자판기 위치를 아냐고 물어보니 모른다고 한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나왔는데 집으로 그냥  가기에는 너무 아쉽다. 직장 생활하는 나로서는 평일 오전에 이렇게나 여유 있는 시간을 갖기 쉽지 않다. 얼마나 귀한 시간인데. 여성분 바로 옆에는 빈 의자가 세 개나 있다. 잠깐 같이 앉아도 되겠냐고 했더니 좋다고 한다.


낯선 내가 접근해서 혹시나 싫다고 하면 괜히 민망해지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반갑게 맞아 주셔서 감사하다. 난 의자에 앉아 초보 운전으로 진양도서관에 오게 된 사연을 얘기한다. 여성분은 본인도 초보 운전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내차  바로 옆 차에 초보스티커가 보인다. 우린 초보 운전이라는 말에 서로가 동질감을 느끼면서 편안해진다. 직접 운전해서 왔냐고 했더니 딸이 초보운전자고 여성은 남편과 함께 차에 동행했다고 한다.


67세의 윤선생님과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선생님은 작은 딸과 함께 창원에서 진주로 출, 퇴근을 한다고 한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며 덧붙인다. 석 달 째라고. 난 너무 놀랍고 대단하다고 했더니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난 궁금한 게 많아졌다. 그럼 하루종일 시간을 어디서 보내냐고 했고, 윤선생님은 도서관 뒷산에도 올라가고 산에 있는 절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화장실이나 점심은 어떻게 해결하냐고 했더니, 처음엔 도서관 화장실을 몇 번 이용했는데 청소하시는 분께 미안해서 되도록 이용하지 않고 멀리 있는 다른 곳을 이용한다고 한다. 점심은 이곳에서 조금 걸어가면 이천 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알려 준다. 언제까지 이렇게 딸과 함께 출근할 거냐고 했더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앞으로 딸이 방학할 이십여 일만 더 따라오면 된다고 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윤선생님이 살아온 지난날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도 듣게 된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진심이 들어가 있다. 꾹꾹 눌러쓴 글자처럼 깊고 맑고 지혜로운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한다. 자꾸만 배우지 못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선생님의 말씀에는 가볍거나 부족함이 없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온 모습이 선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잦은 이사를 하면서도 자식들을 훌륭하게 잘 키워낸 삶의 이야기에 자꾸만 빠져 든다.


윤선생님과 나는 차양막 아래에 앉아 있지만 햇볕에 노출된 사람들것처럼 얼굴이 발그레진다. 시원한 물 한잔이 그립다. 선생님이 본인은 인덕이 많다고 한다. 나 또한 인덕이 많다고 느낀다고 했더니 그렇게 보인다고 한다. 반가워서 난 저한테 본인이 인덕이 많다고 얘기 한 사람은 선생님이 처음이라고 말한다.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봐도 나보다는 윤선생님이 글을 더 잘 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써서 책을 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선생님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선생님이 책을 낸다면 내가 첫 번째로 구매를 하고 싶다고 했다. 진심으로. 초면에 시간을 많이 뺏고 별 얘기를 다 했네. 하시는 선생님에게 난 속 깊은  이야기를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한다. 타인의 삶을 듣다 보면 내가 가진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갖게 되고, 크다고 생각되는 나의 고민들이 별것 아라는 걸 알게 된다.


도서관을 바라보는 곳에서 듣는 윤선생님의 맑고 진솔한 이야기는, 도서관에 꽂혀있는 그 어떤 책 보다 재밌다고 선생님께 말한다. 우리의 얘기꽃은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난 '이제 식사하러 가셔야죠' 그 말에 우리의 이야기는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끝난다. 윤선생님과 난 그렇게 미련을 남긴 채 헤어지려 한다. 선생님은 이것도 인연이라며 언젠가는 또 만나겠죠 하며 명함 한 장을 내민다. 큰 딸의 명함이다. 명함을 눈여겨본다. 큰딸이 글을 잘 써서 책을 냈다고 한다. 윤선생님 딸의 글에도 분명 선생님의 인품이 담겨 있을 것만 같아서 빨리 읽어 보고 싶다. 윤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추억이 만들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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