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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l 05. 2023

장마 때에 부풀고 마르는 것도 있다

후드득후드득. 뚝. 밝아지다기 다시 후드득. 햇볕이 쨍. 변덕쟁이 장마가 시작이다. 승용차에서 내려 걸어간다. 젖어간다 젖어간다. 바짓단을 걷어 올리고 비닐로 가방을 씌운 뒤 질끈 묶는다, 평소 신던 신발에서 슬리퍼로 갈아 신고 한 손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걷는다. 젖지 않은 신발을 담은 봉지가  우산 손잡이에 매달려 걸을 때마다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며 흔들거린다.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물 웅덩이를 돌다리 건너듯이 살짝살짝 살피며 간다. 슬리퍼를 신었음에도 웅덩이는 왠지 밟으면 안 될 것 같다.


장마가 시작되면 축축 쳐지고 가라앉을 것만 같지만, 반대로 부풀어 오르는 것도 있다. 그중에서 자연의 땅에 있는 흙은 가장 먼저 부풀어 오른다. 납작하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살다가 온몸을 들썩거린다. 땅이 부풀다 들뜨기까지의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물기가 사라지기 전까지 부푼 땅은 가라앉지 않는다. 마르던 것이, 먼지만 풀풀 날리던 것이 물을 만나면 젖은 흙을 묻히며 반응한다. 씻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겠다고 아우성친다. 흙은 친화력으로 착각 하리만큼 아무에게나 찰싹 달라붙는다. 젖으면 그렇다. 흙이 들썩거리면 흙을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풀들은 기다렸다는 듯 앞다투어 고개를 치켜든다. 싱그러운 초록의 힘을 과감하게 보여 준다.


제품으로 보면 가볍게 보이고, 얇다고 느껴지는 종이도 물을 보내는 일없이 욕심껏 받아들이다가 부푼다. 점점 부풀다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진 본연의 모습을 보이고 말 때가 있다. 코팅이 된 종이는 미끄럼 타듯 흘러내리기에 그렇진 않지만. 비를 온몸으로 맞으면. 지붕 아래 어지럽게 널려진 천장을 깔끔하게 가려주는 석고보드도 물을 머금고 배가 불룩하게 부푼다. 부풀다 부풀다가 찢어지거나 갈라져 웃음보 터지듯 빵 진다. 


부푸는 것도 있지만 생각의 꼬리를 무는 것도 있다. 오락가락하는 비를 보고 내린다, 샌다, 흩날린다, 적신다고 한다. 물이 새는 비보다는 흩날리는 비가 낫고, 흩날리는 비보다는 적시는 비가 조금 더 낫고, 조금씩 적시는 비보다는 쭉쭉 곧게 내리는 비가 더 좋다. 새는 비는 어디로 향할지 방향을 모르겠고, 흩날리는 비는 튀지 말아야 할 곳까지 튈 수가 있고, 적시는 비는 그 범위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리는 비는 물줄기를, 물길을 예측할 수 있어서 좋다.  두 손바닥에 받기도 쉬워서 모을 수도 있다. 어차피 물은  흘러서 물길을 만들고 그 길 따라 지나가다 한데 모여 웅덩이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를 보는 먹구름은  때때로 머리 위에서 부둥켜 있다가 급하게 흩어져 간다고 분주하지.


비가 내리면 그치길 바라고, 그치고 나면 햇살을 기대하고. 햇살이 나오면 언제 또 시작될지 알 수 없는 비 생각이 난다. 비를 기다리는 건지, 햇살을 기다리는 건지 모를 만큼. 아무튼 사람들은 장마 속에서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우산을 받쳐 들어 물에 젖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옷이 젖으면 기분이 젖을까 봐 별로일까. 다행히 내 마음은 젖은 것이 아니라 약간 부푼 듯싶다. 자꾸만 비를 유심히 보게 되는 걸 보니 그렇다. 비로 인해 분명  새는 곳도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지가 않네,  가만가만 보니  내 마음속 어디쯤이 젖지는 않았으나 약간 샌 것 같기도 하다.





눅눅하고 꿉꿉한 장마철에  마음이라도 꼬들꼬들, 고슬고슬, 포근포근하게 말려 주는 장면에는 뭐가 있을까?


이슬비 내리는 날에 두 번째 만난 특별한 아이, 세 살쯤 되는 남자아이가  온 힘을 모은 뒤 느린 걸음으로 유모차의 바퀴를 굴린다. 첫 만남에선 유모차의 승객이 강아지 인형인 줄 알았다. 두 번째 만남에서 자세히 보니 유모차에는, 아기만큼이나 귀엽고 큰 눈과 하얀 털을 입고 있는 강아지가 있다. 승객은 아주 근사한 표정으로 고개를 살살 돌리며 세상 구경을 하는 중이다. 아이는 강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느린 걸음을 따라 유모차에 탄 강아지와 아이를 동시에 품어 본다. 정지하듯 걸으며.


유치원생 여자아이가 비에 흠뻑 젖어 털이 뭉치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강아지에게 우산을 양보하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햇볕이 좋아 바깥놀이를 하던 새 한쌍이,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쏜살같이 좁은 철 구조물 아래로 날아가서 몸을 숨긴다. 새들은 아무 일 잆었다는듯이 내리는 비를 멀뚱멀퉁 바라보고 있다.


밥만 충내고 모르는 사람이 와도 멍청이처럼 꼬리만 흔들뿐 짖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엄마도, 비가 오면 살 부러진 우산이라도 엉성한 개집에 양보하는 걸 보면 마음이 따듯해진다. 이런 장면이 떠오를 때 비는, 젖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더 마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뽀송뽀송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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