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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를 아는 사람 Jul 04. 2023

나만의 숨구멍을 찾아서

옷수선집에 재킷을 맡겨 소매기장을 줄여 달라고 맡긴다면,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생각할 때 소매길이만 싹둑 잘라서 바느질하면 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우선 전체 옷 모양을 자세히 살펴야 한다. 수선이 가능한지부터 따져 본다. 수선 자체가 안 되는 옷은 옷을 맡긴 사람에게 다시 되돌려 보내야 한다. 옷을 만들 수는 없으나 수선해서 최대한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의 만족도를 위해서는 판단을 잘해야 한다.


옷 형태를 정확히 확인한 다음 재킷의 밑단 일부분을 살짝 튼다. 트인 천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수선이 필요한 소매를 찾는다. 소매를 찾았다면 소매를 안에서 바깥으로 뒤집어서 원하는 길이만큼을 재서 자르고 박음질을 한다. 이 과정에는 손이 많이 가고 신경이 쓰이면서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린다.  마무리가 되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뒤집는다. 이때 중요한 일이 있다. 마지막 소매 뒤집기를 하기 전에 재킷의 밑단을 먼저 박음질하면 안 된다. 그 이유는 밑단을 박음질해서 손이 들어가고 나오는 입구를 막아버리면 수선한 소매를 거꾸로 둔 채 마무리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재킷의 밑단은 바로 숨구멍인 것이다. 한마디로 시작의 통로. 숨구멍은 숨을 쉬는 구멍인데 이것을 가볍게 여기면 큰 낭패를 본다.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수선이 완성된 제품을 다시 뜯어서 재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운동은 몸의 노폐물 배출을 위한 숨구멍이고,
글쓰기는 마음의 쓰레기 배출을 위한 숨구멍이다.

우리는 답답한 공간에 많은 사람이나 어지럽게 물건이 많이 쌓여 있을 때 숨통이 막힌다,  충격적인 사건이 겹겹이 덮칠 때 숨을 쉴 수가 없다. 한여름 무더위에 숨이 턱턱 찬다, 아기의 숨소리가 새근새근 하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서 뛰어 왔는지 숨이 가쁘냐 숨에 대해 자주 얘기한다. 숨을 쉬는 것은 당연하지만, 당연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당황하게 된다.


몸에 있는 숨구멍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추가로 마음의 숨구멍이 있다면. 나만의 숨구멍. 나에게는 편안하게 나의 찌꺼기를 토해 낼 수 있는 숨구멍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글쓰기다. 운동 중에서도 온몸의 근육을 사용해야 하는 생활체조 시간이 있다. 매일 정해진 한 시간 동안은 미친 듯 평소 사용하지 않아 쉬고 있는 근육들흔들어 깨우며 땀을 뺀다. 몸의 노폐물을 빼내는 행위다. 운동은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싹 떨어져 나간 듯한 상쾌함을 준다. 실컷 운동을 하고 나서 산들산들 바람을 맞으며 개운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시간에는 숨통이 트이고 편안하면서도 느긋한 숨을 쉴 수 있다.


글쓰기는 감정의 쓰레기를 쌓아 두지 않고 버릴 수 있어서다. 변덕스러운 감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랬다 저랬다 가만있질 못한다. 어느 순간에는 감정을 섞어서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고 싶을 때가 있다.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당황한 일,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손이 떨리고 목소리가 떨리며 표출해 버린 일,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격해지는 반응. 이러한 일들을 겪고 나서 그대로 두면 마음에 염증이 생긴다. 마음의 염증이. 염증은 없애는 것이 아니라 미리 생기지 않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글쓰기는 감정을 어루만지며 감정을 이해하고 설득해 주는 묘약이 된다.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 억울함, 서운함, 통쾌함을 격하게 들어내지 않고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버리고 비우기도 하지만 더 좋은 것을 얻어내기도 한다. 글은 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쓰다 보면 알게  된다. 이때가 되면 마음의 문이 스르르 열려 답답하게 들어 찬 거친 숨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글을 쓰는 동안은 서서히 안정감을 되찾고 냉철해진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건 버려진다. 그렇게 된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순간에 휘둘린 감정의 가장자리를 가볍게 토닥거려 준다. 괜찮으니 긴장하지 말라고. 불안해하지도 말라고. 글쓰기에 쓰이는 재미있는 모양과 뜻을 지닌 글자들을 이렇게 저렇게 만지다 보면 눈이 빛날 때가 다. 가끔 아름답게 꽂히는 문장의 발견이 생길 때 놀라움에 고른 숨이 가쁠 때가 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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