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를 아는 사람 Jul 25. 2023

난 좋은 이웃들 속에서 삽니다

퇴근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아주머니를 만난다. 분홍색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었는데 어쩜 그렇게도 잘 어울리는지 아주머니에게 '옷이 참 잘 어울리세요'라고 말한다. 아주머니는 '내가 살이 많아서 이런 옷 밖에 입을 수가 없어'하며 웃는다. 평소 가장 무난하다고 여기는 검정이나 흰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는 나와는 정반대다. 아주머니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띈다. 밝고 화려한 옷차림으로 무난한 색상의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데 이번엔 옆집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바로 문 앞에서 손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간단히 눈인사만 나눈 뒤 집으로 들어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있는데 '띵동 띵동' 벨이 울린다. 화면으로 보니 옆집 아주머니다. 아주머니는 '가지를 몇 개 땄는데 맛이 있을지 모르겠네' 하며 까만 봉지를 건넨다. 잘 먹겠다는 인사를 한 뒤 감사하게 받는다. 봉지가 두 개다. 한 봉지에는 가지가, 또 다른 봉지엔 쫀득하고 말랑말랑한 떡이 들어 있다.


옆집 아주머니는 자주 이런 인심을 베푼다. 지난번엔 과일을 잔뜩 챙겨 주고, '양상추, 어떤 날엔 팥죽, 탕수육, , 상추, 등등 많은 걸 나누어 준다. 인정이 참 많은 분이다. 매번 먼저 반갑게 인사하고, 복도를 사용하면서도 우리 집과 옆집이 같이 사용하다 보니 혹시라도 우리 집에 피해가 될까 봐 뭐든 신경을 쓴다. 배려심 깊고, 부지런하고 인심 좋은 아주머니가 옆집이라 얼마나 좋은지. 아파트나 주택으로 이사를 하면 다른 것도 중요 하지만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이 큰 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식사나 차를 마시고 별도로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오다가다 얼굴 보고 웃을 수 있고, 안부를 물을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아주머니는 항상 나를 보면 '출근하는 길이야? 힘들지. 직장 다니는 게 쉬운 게 아니야. 오늘도 수고해요!' 하며 응원 인사를 한다. 이런 인사를 받으면 없던 힘도 생기면서 기운이 난다. 아주머니와 나의 사이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이 정도의 거리가 오래도록 서로를 챙기면서 잘 지낼 수 있는 거리 같다.


저녁밥 준비를 하는데 괜히 즐겁다. 내가 시장에서 사 온 콩나물(돈에 비해 콩나물 양이 많다), 냉장고에 남은 오징어 한 마리, 옆집 아주머니가 준 가지, 팥과 쑥이 어우러진 떡까지. 저녁 준비하는 부엌에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어느 것 하나 색깔이 같은 것이 없고, 모양이 같은 것이 없고, 맛이 같은 것이 없다. 오늘 저녁상은 인정과 감사함으로 한상이다.


좋은 이웃들과 만나 서로 안부 인사 하며 잘 지낸 지 거의 8년. 이사를 하게 되면서 옆집 아주머니와 헤어지게 된 날. 난 음료수 한 박스를 사들고 옆집으로 간다.'그동안 좋은 이웃 만나서 참 좋았어요. 항상 건강하세요' 하며 음료수를 드린다. 아주머니는 '고마워. 고마워. 잠깐 기다려봐' 하더니 잠시 후 '이건 선물이야, 남편이랑 하나씩 해!' 하며 우리 부부의 선물을 준다. 선물은, 손수 염색해서 만든 예쁘고 부드러운 손수건 두 장.


난 이사한 집에서  옆집 아주머니에게서 받은 두 장의 손수건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퇴근시간 현관문에 걸려있던 까만 봉지들을. 봉지를 열 때마다 '받은 사랑을 어떻게 다 보답하지' 하며 생각하던 때를 떠올린다. 아주머니에게선 한겨울의 추위도 금세 녹여 버릴 것 같은 따스함이 있었는데. 세상이 박하고 갈수록 인정이 메말라간다고들 하는데, 좋은 이웃들 사이에서 인정을 넘치게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린 왜 작가가 되려고 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