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회복제 한 박스

젖은 마음이 말라갈 때

by 나를 아는 사람

평소보다 좀 더 빨리 깨끗하게 청소한다는 생각으로 서둔다. 웬만해선 긴 바지를 접지 않았는데 오늘은 바지를 동동 걷고 청소를 시작한다. 바쁘게 일을 하다 보니 신발 위로 물이 스며든다. 아니 젖는다. 축축하다. 축축한 양말을 빨리 벗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청소가 다 끝나야 양말을 벗을 텐데 아직 멀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청소를 하면서도 마음은 젖은 양말에 집중된다. 시간은 점점 빨리 흐르고 발걸음은 바쁘게 움직인다. 점점 스며드는 양말의 물기는 신발 깔창으로 내려간다.


날이 빨리 밝아져서 그런지 5월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출근길 가로등이 꺼져 있다. 청소하는 나는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 하면서 중간중간 시간을 체크한다. 요즘은 시간 체크가 헷갈린다. 몇 달 전만 해도 같은 시간대 어둡던 바깥 풍경이 이제는 환하게 밝아졌기 때문에.


서둘러 청소구역으로 이동하던 중 출근 시간에 자주 만나는 현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사원을 만났다. '수고 많으시죠?' 했더니, '이모가 더 힘들지요. 우리는 건물 안에서 일하잖아요!' 한다. 그녀는 좁은 장소에서 근무시간 거의 대부분을 쪼그리고 앉아서 일한다. 신입 사원이 들어오면 힘들어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그 일을 하면서도 힘들다는 내색보다는 오히려 나를 격려한다.


감사한 마음에 힘을 내어 열심히 일 하고 있는데, 항상 청소 깨끗하게 해 준다며 감사 인사를 잘하던 아저씨(이름과 나이를 잘 몰라서, 나 보다 많이 어려 보이긴 하다)가 저 멀리서 말을 건넨다. 양 손에 박스를 하나씩 들고 있다. 휴지통 앞이라 쓰레기를 버리려고 하는 것으로 알았다. 난 '거기 아무 데나 두고 가시면 제가 알아서 치울게요!' 했다. 다시 일에 집중하려 하는데 그분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가까이 가 보니 아저씨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박스 1개를 건네주면서 '이모님 드세요'한다. '저 주시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잘 나눠 먹겠습니다'며 챙겨 받았다. 청소하던 중이라 우선 쓰레기통 옆에 두고 하던 일을 하는데 자꾸 선물 받은 음료 박스에 눈길이 가면서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아침부터 음료 선물을 받았다며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좋은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만들기 때문에. 부러움 잔뜩 받으며 고생하는 동료들과 나누어 마셨다. 시원하게 냉장고에 뒀다가 땀 흘리고 난 뒤 마셨더니 꿀맛이다. 다 마시고 난 병을 유심히 보는데 '피로회복' 이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무슨 일을 해도 피로할 것 같지 않다.


새벽부터 양말이 축축하게 젖어서 마음까지 축축 했는데 뜻밖의 격려 인사와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마음이 햇살 좋은 날, 빨랫줄에 널어놓은 수건처럼 꼬들꼬들하게 말라 간다.


사는 건 다 이렇다. 특별할 것이 없다. 사람을 보고, 만나고 느끼며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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