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못하는 성격 때문에
버릴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누가 그걸 다 먹어요?'
남편이 퇴근길에 과자 한아름을 안고 왔다. 아니 반 포대라 불러도 되겠다. 딸아이와 난 과자를 보는 순간 너무 놀라서 제 자리에 정지된 상태로 서로 쳐다만 보고 있다. 분명 남편이 사 가지고 온 것은 아닐 테고.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가져 왔을까. 추리에 들어간다. 남편은 자주 두 손 무겁게 귀가한다.
벌레가 파 먹은 과일을 가져올 때도 있고. 못난이 호박이나 고추를 가져올 때도 있고, 생선을 가져오기도 한다. 남편이 가져오면 항상 걱정이 생긴다. 양이 많아서 처치 곤란이다. 적당량을 가져오면 괜찮은데 너무 많은 양은 우리 가족이 먹고 이웃에 나눠 먹어도 남을 때가 있다.
남편이 가져온 과자는 남편 친구가 대형 과자 한 봉지를 사서 반은 본인의 늙으신 어머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 집에 오게 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과자에 바람이 빠졌다는 것. 딸아이는 몇 개 먹더니 바람이 빠져서 못 먹겠다고 한다. 난 며칠 동안 오다가다 대용량 과자만 쳐다봤지 먹어 보지는 않았다. 먹어야 하는데 먹을 수도 없고 버리자니 아깝다. 버리는 것도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지, 일반 쓰레기에 넣어야 할지 고민이다. 딸아이는 싱크대에 버리면 녹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낸다.
일단 과자가 담긴 비닐봉지를 열고 하나를 꺼내어 먹어 본다. 역시 바람이 빠져서 맛이 없다. 질기긴 또 얼마나 질긴지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식감이 좋지 않다. 실험해 본다. 일단 종이컵에 과자 3개를 넣고 물을 붓는다. 20여분 기다린 끝에 과자를 꺼내어 눌러본다. 혹시나 물에 녹으려나 싶었는데 녹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버려야겠다. 음식물 쓰레기통에. 맞겠지? 음식물이니까.
남편이 과자 봉지를 안고 집으로 들어오듯 딸아이가 과자 봉지를 안고 내가 뒤따라 과자를 버리러 나간다. 많은 양의 과자를 버리려고 하니 괜히 창피하고 죄짓는 생각에 숨기고 싶다. 밝은 색에 부피까지 커서 숨길 수도 없어서 후다닥 쓰레기 분리장으로 간다. 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열고 빨리 버리고 집으로 가고 싶었는데 글쎄 음식물이 거의 다 차서 한꺼번에 버리지 못했다. 꼭 우리가 버린 과자로 큰 음식물통의 밑바닥부터 위까지 가득 채운 듯하다.
음식물을 버리러 온 주민들이 주황색으로 가득 찬 과자를 보면 어떤 반응을 할지 상상이 간다. 서둘러 주차장을 지나 다른 동에 있는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두리번두리번 놀이터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이곳에도 역시 음식물 쓰레기통이 가득 차기 직전이다. 일차적으로 버리고 남은 과자를 음식물 쓰레기통에 다 넣고 나니 또 대형 음식물 쓰레기통이 과자로 가득 찬 느낌이다. 버려야 할 것을 다 버리고 나니 속이 후련하다.
남편은 매사에 거절을 못한다. 부담스러워서 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런 남편에게 사람들은 뭔가 자꾸 챙겨준다. 특히 많은 양의 먹거리를. 받고 나면 항상 후회하면서도 또다시 받아온다. 다른 것은 잘하면서 왜 거절을 못하는지. 분명 마음이 약해서 그런 것 같다.